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남북 격차 10배…韓, 바람직한 경제발전 사례"

2024-10-15 16:09
"대기업 집중·고령화·북한 문제 등은 당면 과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모을루(57), 사이먼 존슨(61), 제임스 A. 로빈슨(64) 등 3인방. [사진=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바람직한 제도에 기반해 이뤄낸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한국의 경제 성공 모델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국이 여전히 대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고령화와 북한 문제 등 어려운 과제에 당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다론 아제모을루(57)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14일(현지시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대학 측이 주최한 온라인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에 대한 질의에 “남북한은 제도의 역할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남북한은 분단되기 이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서로 다른 제도 속에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격차가 열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같은 한국의 발전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며 “한국의 민주화 과정은 매우 어려웠지만, 민주화 이후 성장 속도를 더 높였고 성장 방식도 더 건강하게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사이먼 존슨(61) MIT 교수도 “쉬운 여정이 아니었고 오늘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경제는 훨씬 나은 상태이며 다른 나라들이 이룬 것에 비해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고 소개했다. 아내가 한국계라는 존슨 교수는 “이는 우리가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지향하게 만들어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공동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64) 시카고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담을 이룬 나라 중 하나”라며 “지난 50년간 한국의 성장을 일궈온 성장 모델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로빈슨 교수는 “북한은 소수 엘리트층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착취적 제도에 장악된 반면에 한국은 포용적 제도를 구축해 폭넓은 기회와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극적인 사회이동과 혁신을 창출했다”고 강조했다.
 
수상자들은 한국 경제가 극복해야 할 당면 과제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급속한 고령화를 겪는 국가들은 많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새로운 생각 및 기술에 대한 개방성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경우 경쟁 압력을 통해 도전에 대처하는 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북한에 대해서는 큰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 시스템은 현시점에서 여전히 굳어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존슨 교수는 북핵·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해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며 "좋은 제도가 포용적인 성장을 가져오고 더 많은 사람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고 해서 지배층이 그런 제도를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노벨경제학상 선정 기관인 스웨덴 왕립 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날 '제도의 형성 및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 대한 연구'로 이들 3명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 수상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의 경제적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한 혁신적 연구를 수행했다"며 "제도가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 대한 그들의 통찰력은 경제 개발 촉진에 있어 민주주의와 포용적 제도를 지원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수상 이유를 전했다.
중국 포용성 떨어져 경제발전 한계…트럼프 대선 불복엔 ‘우려’

반면 수상자들은 포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중국의 경제발전에 한계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존슨 교수는 “(포용적 제도와는) 다른 방식으로도 경제 성장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계속 지속하고 더 강하고 굳게 만들려면 포용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로빈슨 교수 역시 “중국은 현대적인 포용 경제와는 맞지 않는 정치 체제를 갖고 있다”며 “포용적 제도를 창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유지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세계에는 40~50년 동안은 (중국과 같은 체제로도 경제발전을) 잘한 많은 사례들이 있다”면서도 “그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소련도 50~60년간은 잘했다”고 덧붙였다.
 
수상자들은 미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로빈슨 교수는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포용적 제도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며 “지난 대선 패배를 거부한 트럼프는 시민의 민주적 규칙을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존슨 교수는 “대선 불복은 산업화 세계에서 내가 목격한 것 가운데 가장 큰 우려”라고 말했다.

올해 노벨상을 휩쓴 인공지능(AI)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아제모을루 교수는 "우리는 AI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인간의 생산, 인간의 능력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의 인적 자원이 국가의 의미있는 번영에 있어 관건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수상자 3명은 국가 간 부(富)의 차이를 연구해온 학자들이다. 세 사람은 국가간 불평등과 빈부차에 천착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례에도 주목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지한파’로 꼽히기도 한다. 아제모을루·로빈슨 교수는 국내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등의 공동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