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 (27) 승리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병불염사(兵不厭詐)

2024-10-15 06:00

[유재혁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다. 전통 지지층까지 돌아섰다는 위험 신호다.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으나 지지를 거둔 사람들이 말한다.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걸 막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한 거라고.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도 크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거부감 또한 상당하다는 얘기다. 반면에 지지자들에게 이재명은 북한의 최고존엄 부럽지 않다. 이처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도 흔치않다. 

이재명 대표가 연일 대통령 탄핵 군불을 때고 있다. 자신의 사법리스크 때문일 것이다. 이 대표는 7개 사건,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고 있고, 그중 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사건은 다음 달에 1심 선고가 나온다. 정치적 운명이 달려 있는 재판들이다. 만약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이 대표로서는 대선 시간표를 앞당기는 게 최상의 전략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탄핵을 통한 대통령의 중도 퇴진밖에 없다. 하지만 탄핵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카메라에 비치는 이재명의 표정은 짐짓 여유로우나 속은 타들어갈 것이다. 

이재명은 흙수저 출신에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이런 유형은 대체로 생존본능이 치열하다.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목표지향성이 강하다. "무협지 화법으로 말하자면 난 '만독불침'의 경지다. 포지티브가 아니라 네거티브 환경에서 성장했다. 적진에서 날아온 탄환과 포탄을 모아 부자가 되고 이긴 사람이다." '형수 욕설'과 '여배우 스캔들'에 시달리던 이재명이 경기지사에 당선되고나서 한 말이다. '만독불침(萬毒不侵)'은 어떤 독에도 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니 대단한 자신감이요 자부심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기를 돌파하는 이재명 방식은 화법에서도 드러난다. 남 탓, 언론 탓, 검찰 탓에 말 바꾸기, 모르쇠와 버티기 등 불리할 때 쓰는 이재명의 화법을 강준만 교수는 '안면몰수' 화법이라고 이름붙였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박근혜를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며 사람들이 맥락을 무시한 탓으로 돌렸다. 11일간 해외출장을 같이 가고 현지에서 골프도 같이 친 성남시 간부 직원을 한사코 모른다고 잡아뗀다.  

이재명에게 정치는 전쟁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 불리는 한비자가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기원전 633년, 송나라가 강대국 초나라의 공격을 받고 진(晋)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진나라 군주 문공(文公)이 초나라의 동맹국 조나라와 위나라를 쳐서 점령하고는 초나라와의 단교를 강요했다. 이에 격분한 초나라가 송나라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창끝을 진나라로 돌렸다. 결전을 앞둔 두 나라 군대가 성복(城濮)이란 곳에서 대치했다.

당시 초나라 연합군의 전력은 진나라 연합군보다 월등해 진나라로서 정면승부는 필패였다. 문공의 외숙 자범(子犯)이 계책을 내놓았다. "예의에 신경을 쓰는 군자를 대할 때는 성심과 신용을 중시함으로써 상대방의 신뢰를 얻어야 하겠지만, 상대방이 죽어야 내가 사는 전쟁터에서는 온갖 간계로 상대방을 속여도 무방합니다." 문공은 자범의 계책대로 후퇴하는 척하며 초군을 유인한 후 매복한 군대로 급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성복 전투로 천하의 판도가 바뀌었고, 문공은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두 번째 패자(霸者)로 등극했다.

매복과 기습은 병법의 기본이다. 그러나 춘추시대 초기만 해도 이를 떳떳하지 못한 속임수로 여겼다. 인도적 가치를 지키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겨루는 게 일종의 규칙이었다. 상대방 군대가 전열을 갖추지 못했을 때 공격하는 것을 꺼리다 패배한 고사에서 유래한 '송양지인'은 지금의 잣대로 볼 때나 어리석음의 표상이지 당대의 평가는 엇갈렸다. 성복 전투 백여 년 뒤에 등장한 손자병법에 이르러서야 "전쟁은 속임수(兵者 詭道也)"라고 정의한다. 진문공의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 '병불염사(兵不厭詐)'는 '군사(軍事)에서는 적을 속이는 간사한 꾀도 꺼리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한비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이재명이 살아가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진문공이 패자가 된 것은 속임수로 대승을 거둔 성복 전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정적의 칼날을 피해 19년간 각국을 떠돌며 간난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심신을 단련했고 세상 물정에 눈을 떴다. 시련을 거울 삼아 즉위 후 선정을 베풀고 부국강병의 기반을 다짐으로써 강적 초나라를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하를 아우르는 포용력과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당대의 패자가 되었다.

22대 국회에서 폭주를 거듭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이재명이 살아가는 방식과 판박이다. 당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이 목적임은 불문가지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정치가 총칼 없는 전쟁으로 전락했어도 '병불염사' 방식이 정답일 수도 없고 정답이어서도 안 된다. 비상한 머리와 깡, 후흑(厚黑)으로 무장한 만독불침의 이재명이라면 자신을 이중 삼중 옥죄는 사법리스크를 돌파해 낼지도 모른다. 설령 그럴지라도 이재명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처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잣대라는 또 하나의 허들을 통과해야 한다. 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정치가 아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의 정치에 대한 믿음을 줄 때 비로소 대권으로 가는 길이 조금은 더 넓어질 것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