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전기차 이어 수소차까지…미래 車 패권 잡으려는 중국
2024-10-14 06:00
[대전환기 중국 제대로 읽기]⑥
저가車는 옛말…전기차 핵심기술 보유한 中
태국 車시장을 바꿔놓다···中기업 출해 3.0
수소차 시대 대비하는 中···우리나라 현실은
저가車는 옛말…전기차 핵심기술 보유한 中
태국 車시장을 바꿔놓다···中기업 출해 3.0
수소차 시대 대비하는 中···우리나라 현실은
“국제적인 경쟁력과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냐, 세계를 선도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냐, 해외로 대량 수출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느냐.”
중국 전기차 정책을 진두지휘한 먀오위(苗圩) 중국 전 공업정보화부 부장이 2009년 10월 20일 중국의 1000만번째 자동차를 생산할 당시 세계 자동차 강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로 언급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 대국'에 그쳤던 중국은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자동차 강국'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중국은 전통적인 내연기관차로는 독일·일본·한국·미국 등 경쟁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보고, 대신 전기차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에 승부를 걸었다. 새 차선(전기차)으로 바꿔 상대(경쟁국)를 추월하는 이른바 ‘환도색차(換道賽車)’ 전략이다. '환도색차'는 중국 전기차 정책 추진 전략을 담은 먀오 전 부장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저가 車는 옛말···전기차 핵심 기술 보유한 中
전 세계 자동차왕으로 자리매김한 중국 전기차 기업 비야디는 지난 9월 25일 900만번째 전기차 차량 생산 기념식을 거행했다. 800만번째 전기차를 출시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이니 올해 안에 1000만번째 전기차 생산도 가능해 보인다. 900만번째 생산 차량은 비야디가 프리미엄 브랜드로 밀고 있는 양왕의 순수 전기 슈퍼카 U9. 가격만 우리 돈으로 3억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럭셔리 차다.
기자도 최근 직접 비야디 본사를 방문해 양왕의 순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U8을 직접 시승할 기회가 있었다. 차량이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을 하고, 좁은 골목길 평행주차도 복잡한 핸들 조작 없이 자율주행으로 손쉽게 한다. 타이어 하나가 펑크 나는 긴급 상황에서도 나머지 타이어 3개로 주행이 가능하고, 비상시 물에 떠서 이동할 수 있는 수륙양용 기능도 갖췄다. 기자는 시승 내내 감탄사를 금치 못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 판매 1위 비야디는 그동안 값싼 전기차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엔 첨단 기술을 앞세운 프리미엄 전략에 시동을 걸며 질주하고 있다.
‘기술은 왕, 혁신은 근본(技術為王 創新為本)’. 중국 광둥성 선전에 위치한 전기차왕 비야디 본사 전시관 내 '기술의 벽'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문구다. 이곳엔 비야디가 보유한 특허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비야디는 현재 보유한 특허만 4만2000건을 넘을 정도다. 특히 배터리 셀을 얇은 칼날 형태로 촘촘히 배열해 배터리 모듈을 생략하고 곧바로 배터리팩으로 만든 ‘블레이드 배터리’와 배터리가 바로 차체 바닥이 되는 셀투보디(CTB, cell to body) 기술은 다른 전기차 업체에도 보급될 정도로 인정받는 비야디만의 핵심 기술이다.
비야디는 올 상반기에만 연구개발(R&D)에 200억 위안(약 3조82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전년 대비 무려 4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중국 제일재경일보는 이 수치가 같은 기간 테슬라(약 3조원)보다 많다며 올해 비야디의 연간 R&D 지출이 500억 위안(약 9조5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왕촨푸 비야디 회장이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 기술을 놓고 경쟁하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부터 스마트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비야디는 이제 자율주행 기술 개발 등 미래 스마트 기술에도 안간힘을 쏟는다.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스마트 주행팀’을 만들고 엔지니어를 4000명 이상 투입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태국 車시장을 바꿔놓다···中기업의 '출해 3.0'
중국 자동차의 '출해(出海·해외 진출)' 움직임도 한층 거세졌다. 중국은 지난해 자동차 수출량이 역대 최고치인 500만대에 육박해 일본을 제치고 처음으로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으로 부상했을 정도다. 내연기관차 시대에 전 세계 시장을 점령했던 유럽·미국 등은 이제 중국산 전기차 물량 공세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온갖 관세 장벽을 높이며 중국산 전기차 유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쓸 정도다.‘아시아 디트로이트’라 불리는 태국. 이곳은 한때 일본 자동차의 본고장이라 불렸지만 이제 도로는 중국 전기차로 채워지고 있다. 태국 정부가 친환경차 정책을 내세우며 현지에 전기차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것.
전기차 전환에 한발짝 뒤처졌던 일본차 브랜드는 결국 중국차 공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현지인들이 차츰 중국산 전기차를 구매하기 시작하며 2022년 태국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86%를 차지했던 일본산 자동차 점유율은 2023년 말 75%까지 하락했다. 지난해 태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약 7만6000대인데 이 중 상위 4개 브랜드는 모두 중국 브랜드로 채워졌다.
태국 방콕 수완나품공항에 착륙해 시내로 들어오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상하이자동차(SAIC), 비야디, 광저우자동차(GAC) 대형 광고판이 차례로 눈에 띈다. 현지에선 요새 태국에서 잘나가는 광고판 자리 대부분을 중국산 전기차가 차지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7월 한 달에만 태국에 비야디와 광저우 자동차 산하 전기차브랜드 아이안이 공장을 짓고 가동에 돌입했다.
중국 자동차 기업의 출해도 차츰 진화하는 모습이다. 제품을 단순히 해외로 수출만 하던 '출해 1.0'에서 지리차가 볼보를 인수한 것처럼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출해 2.0', 그리고 이제는 중국차의 생산모델과 공급망 플랫폼을 해외에 그대로 복제해 옮기는 '출해 3.0'으로 거듭난 게 눈여겨볼 점이다.
실제 태국 라용 산업단지에는 자동차를 비롯해 오토바이 부품, 신에너지, 기계 및 전자제품 등 분야를 포함해 260개 이상 중국 기업이 입주해 7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사실상 이곳에 거대한 중국 자동차 공급망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소차 시대 대비하는 中···우리나라 현실은
하지만 중국은 전기차 강국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편안한 처지에서도 위급한 상황에 대비한다는 '거안사위(居安思危)’다. 언젠가 자동차 시장 판도가 바뀔 타이밍을 준비하거나 더 나아가 자동차 시장 게임을 주도적으로 바꿀 새 타이밍을 보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플라잉카부터 수소차까지 중국은 미래차 시장 패권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수소차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은 이미 2020년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 계획(2021~2035년)'을 세워 수소 에너지와 수소차를 미래 전략 산업의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수소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수소 충전소를 설치하는 등 수소 발전 인프라를 적극 구축하고 있다. 수소 생산에서부터 운송과 발전시스템 구축, 수소차 보급까지 아우르며 장기적인 시각에서 산업 발전을 모색하는 것. 수소 사회가 도래해 비야디와 같은 전기차 업체가 수소차로 전환한다면 중국이 전기차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노선을 또 한번 이어갈 가능성도 크다.
우리나라 현대차도 수소차 시대에 대비해 수소차 밸류체인 투자에 적극 나서며 앞서 나가고 있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현대차는 중국 수소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내다보고 광둥성 광저우에 해외 처음으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HTWO 제조거점을 세워 중국 시장에 먼저 진입했다. 현재로선 현대차가 넥쏘(NEXO) 수소차를 중국에서 직접 판매하기보다는 중간재인 연료전지를 통해 중국 수소 인프라 공급망에 선제적으로 합류하는 게 향후 성장 기회가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기업도 한 수 앞을 내다보며 철저하게 경영 전략을 짜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어떤가. 최근에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 한 쓴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중국 정부는 수소차 시범사업·시범구 등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우리나라는 그럴 만한 시도 자체도 늦고, 관련 인프라나 법·제도 정비도 늦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가장 가깝고 효율적인 수소 공급국이자 세계 최대 수소 발전 생산국, 세계 최대 수소차 시장인 중국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데도 미·중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탈중국화 기조 속에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머나먼 호주 등과 수소 공급망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를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래 기술 경쟁은 국익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정치 싸움으로 단순히 근거 없이 탈중국만 외치기보다는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