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칼럼] 심각한 내수부진에도 美처럼 빅컷이 힘든 이유

2024-10-14 06:00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3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5bp 인하했다. 시장 전망과 대체로 부합되었다. 내린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9월 미국의 기준금리 빅 컷(50bp), 다른 하나는 심각한 내수 부진이다. 향후 한국 금리 전망도 이 두 가지 요인에 따라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 기준금리
세계 경제는 미국 FOMC의 기준금리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 따라 미국 경제가 결정되고 또 한국의 금리도 결정된다. 지난 9월 FOMC 회의(18일)에서 미국은 기준금리를 50bp 내렸다. 예상외의 ‘빅 컷’이었다.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대체로 25bp 인하를 예측하는 분위기였지만 뚜껑을 여는 순간 예상이 빗나가면서 금융시장은 뒤숭숭했다. 발표 직후 시장은 FOMC 결정에 대해 놀랐던 것이 분명했다. 미국 주가는 FOMC의 빅 컷에도 불구하고 발표 직후 흐물흐물 내려가면서 당일 종가는 1% 하락한 채로 끝났고 이후 한 달 동안 지금까지 주가는 대체로 횡보를 이어가고 있다.
 
FOMC의 빅 컷 결정에 시장이 놀란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빅 컷의 이유가 무엇인지 불투명했다. 파월의 기자회견 첫 질문에서 왜 내렸는지를 물었지만 파월의 답변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FOMC 위원들이 연말까지 100bp 인하하여 기준금리는 4.4%로 내려갈 것으로 점치고 있다는 경제전망(SEP)에 답이 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최근 몇 달간 계속 파월이 강조해 온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이다. 파월 의장의 최근 기자회견 행간을 읽어보면 파월이 가장 염려하고 있는 부분은 노동시장에 대한 불안 이다. 신규 취업자 증가 수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구인·구직 비율도 하강하고 있으며 임금상승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노동시장이 식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그렇지만 노동시장이 우려할 만큼 나쁜 것은 아니다. 파월도 여러 번 노동시장이 아직 탄탄하고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실업률이 4.2%이면 매우 좋은 성적이다. 어떤 기자는 무언가 노동시장에 걱정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도 물었지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답변했다. 그렇다면 결국 FOMC의 이번 빅 컷은 블룸버그의 매키 대기자가 물었듯이 노동시장의 둔화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pre-emptive) 금리 인하’인 것이 분명하다. “노동시장이 아직 튼튼할 때 지원해야 한다“는 파월의 답변도 바로 그 점을 시사한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가변적인 시차(long and variable lag)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의 정책 대응이 지나치게 느리다는 비판을 받아온 파월로서는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치고 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본시장에 특별한 우려할 사안이 있어서 빅 컷을 단행한 것이 아니라 다만 예방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내렸다고 이해하면서 9월 19일 주가는 2%대 폭등을 기록한 것이다.
 
연준 내부의 불협화음
문제는 9월 18일의 빅 컥 결정이 만장일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직 물가가 잡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격적인 기준금리는 시기상조라는 점을 대부분 FOMC 위원들이 인식하고 있다. 9월의 CPI는 2.44%로 여전히 목표치 2.0%보다는 높다. 게다가 근원CPI는 3.31%로 8월 3.20%보다 높아졌고 8월 PCE도 2.7%로 7월 2.6%보다 높다.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고 생각만큼 떨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FOMC 내부에서도 급격한 금리 인하를 반대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명시적으로 25bp 인하를 지지한 미키 보먼 이사는 물론이고 연준 이사회 위원 중에서도 여러 번 신중한 인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존 윌리엄스나 크리스 월러도 내심 50bp 인하에 거부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더하여 최근 발표된 고용통계에서는 신규 취업자가 지난달 15만9000명에서 25만4000명으로 늘어난 데다 실업률이 4.2%에서 4.1%로 하락했으니 고용시장이 악화된다는 우려도 성급한 판단인 것이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는 50bp 빅 컷에 동의할지라도 다음 11월 7일이나 혹은 12월 18일 회의에서는 인하 폭이 훨씬 작아질 공산이 크다. 결국 FOMC의 이번 빅 컷은 향후 빅 컷 시리즈의 예고편이라고 하기 보다는 꾸준히 침강하는 노동시장의 완만한 안정을 위한 일회성 선제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향의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내려갈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한국은 미국처럼 빅 컷 힘들다

당면 문제는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이다. 정부 당국은 여러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기획재정부도 그렇고, 대통령실도 그렇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고 표명해 왔다. 이유는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내수가 너무 부진하다. 특히 통상 4% 넘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상반기에 1%를 밑도는 상황이다. 실질소매판매액지수도 9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소비를 늘이는 좋은 정책수단이 금리를 낮추어 이자 부담을 경감시키고 이를 통해 민간소비를 진작하는 것이라고 정부는 판단하는 듯하다.
 
이번에 한국은행이 25bp를 내렸지만 앞으로 더 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머뭇거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하나는 가계부채가 너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작년 중반까지 꾸준히 감소하던 가계신용이 작년 말부터 꾸준히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정부나 한국은행으로서는 GDP 규모와 맞먹는 가계부채가 더 커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둘째로 수도권, 특히 서울 아파트 가격 증가율이 꺾이지 않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실거래 가격 증가율은 2024년 들어 점점 가팔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낮추면 아파트 가격 급등세를 더 부추길 것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걱정이다. 셋째로 기준금리를 낮추면 이자소득이 줄어들면서 이자수익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내수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통상 기준금리가 1% 낮아지면 대출금리는 1%보다 훨씬 적게 떨어지지만 예금금리는 거의 1% 가까이 낮아지면서 대출자의 혜택은 크지 않으면서 예금자의 이자소득은 크게 낮아지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준금리를 낮추어도 소비가 살아날 가능성은 낮다.
 
한국은행이 가장 고민하는 대목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아직 미국보다 175bp나 더 낮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려했던 자본 유출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기적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자본 유출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빅 컷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강세로 반전되면서 엔화 환율이 다시 달러당 150엔대로 반등하고 있다. 만약 원화 환율이 안정되지 못한다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다시 올려야 할지도 모른다.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