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실수요자 가려내느라 안간힘"… 갈팡질팡 지침에 은행권·소비자만 '진땀'

2024-09-24 06:00

[사진=정윤영 기자]

이달 초 5대 시중은행은 저마다 실수요자를 위한 예외 규정을 쏟아냈다. 지난 두 달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금리를 올리고,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던 모습과는 상반된 행보다.

예비 차주들은 주택 소유 여부나 결혼 계획 등 자신이 처한 개별 상황까지 고려하게 됐다. 현재 1주택자가 수도권 지역에서 주택을 하나 더 구매하려면 하나·농협은행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도 받기 더 까다로워졌다. 신한은행은 취업 등을 증명하기 어렵다면, 1주택자에 대해서도 전세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대출받기 위해선 취업, 이직 등의 직장이전, 자녀의 전학, 이혼, 분양권 취득 등 예외요건에 속해야 한다.

문제는 대출을 받으려는 차주의 상황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1주택자 중 집 갈아타기를 하고자 하는 경우나 무주택자지만 최근 상속을 받게 된 상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수도권 주택 갈아타기의 경우 5대 시중은행 모두 가능하지만, 국민·신한·우리은행에는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렇듯 은행마다 다른 대출 규제 예외 조항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대출받는 팁'을 주제로 한 유료 강의까지 성행하고 있다. 

은행에서도 차주마다 상황이 천차만별로 다르다 보니 실수요자를 가려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예외 상황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청첩장 등의 증빙 서류를 위조하는 편법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이 모든 개인 차주의 상황을 고려하고, 이를 관리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를 가려내는 건 오로지 은행의 몫이 돼버렸다.

대출 시장에 혼선이 생기게 된 원인은 금융당국의 일관되지 않은 정책 때문임이 분명하다. 추석 연휴 전, 시중은행의 고삐를 죄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끝내 사과를 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이 원장은 "가계대출 급증세와 관련해 세밀하게 입장을 내지 못해 국민이나 은행 창구 직원에게 불편과 어려움을 드렸다"며 연신 사과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사과를 남기는 와중에도 가계대출은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히려 대출 관리와 실수요자 보호 책임을 은행권에 떠넘긴 것이다. 

시장에 혼선을 준 금융당국이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더 이상 책임을 은행권으로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신중한 논의 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뒤늦게 사과하면 금융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은 무색해진다. 이제부터라도 가계 부채 문제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세밀한 정책을 기반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