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 장기표 암 투병 중 별세…향년 78세

2024-09-22 10:35

7일 오후 1980년대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실이 있었던 서울 중구 장충동 분도빌딩(옛 분도회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7주년 기념 민통련 현판 제막식에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2024.6.7 [사진=연합뉴스]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항년 78세의 나이로 22일 별세했다.

유족 등에 따르면 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 35분께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담낭암 투병 중이던 고인은 발견 당시 4기였으며 입원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후 전태일의 분신자살을 접하면서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는 한동안 도봉구 쌍문동 같은 동네에 살며 노동운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은 일절 수령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이어 17·19·21대까지 총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선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도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2대 총선에서도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후보를 냈지만 원내에 입성하지 못하는 등 제도권 정계로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지며 조문은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 및 장지는 26일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