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정치적 셈법만 난무하는 '채상병 특검법'

2024-09-05 16:02

[유창선 시사평론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5개 야당이 새로운 내용의 ‘채상병 특검법’을 지난 3일 발의했다. 민주당은 이를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늬만 제3자 추천이고 내용은 변함없이 야당 결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새로 발의된 특검법은 대법원장이 4명을 추천하면 그중 야당이 2명을 정하도록 되어있다.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 야당이 2명으로 추린 뒤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하는 내용이다. 대법원장이 누구를 추천하든 결국은 야당이 선호하는 특검만 임명한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대법원장 추천 후보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민주당 등이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비토권까지 들어갔다. 형식적으로는 대법원장이라는 제3자 추천 방식이지만, 민주당이 원하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대법원장에게 무한정으로 후보 교체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제3자가 아닌 야당이 결정하는 특검법이다. 가짜 ‘제3자 추천’ 특검법인 것이다. 국민의힘이 요구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제보 공작 의혹’은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개혁신당은 “국회가 비토권을 갖는 건 문제가 있다”며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런 특검법을 새로 발의하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했던 ‘대법원장을 통한 제3자 추천’ 방식을 반영한 특검법이라며 수용을 압박한다. 그러나 한동훈 대표가 거론했던 ‘제3자 추천’의 취지가 근본적으로 변형된지라 국민의힘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야당들이 새로 발의한 특검법에 대해 “형식은 3자 추천이라지만 야당이 입맛대로 특검을 고르겠다는 ‘야당 셀프 특검’”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동훈 대표도 “내용을 봤는데 (기존 야당 특검안에서) 바뀐 게 별로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등이 발의한 새 특검법은 야당이 독점했던 특검 추천권을 대법원장에게 일부 넘긴 차이는 있지만, 결국 결정은 야당이 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특검법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제안을 반영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이다. 민주당이 여야 합의를 통한 채상병 특검법의 성사보다는 여전히 여당이 수용불가능한 특검법으로 압박하려는 모습이라 지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야당의 변형된 특검법은 다분히 정략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채상병 특검법을 갖고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국민의힘도 문제가 심각하다. 한동훈 대표는 진즉에 대법원장이라는 제3자 추천의 특검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현재 여권 내부는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한 찬반 의견만 분분하고 교통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우선 대통령실부터가 한 대표의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고, 추경호 원내대표 등도 반대 입장이다.

친한동훈계 의원들조차도 한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을 추진할 경우 당이 분열될 위험 때문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미진할 경우 특검을 고려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친한계 장동혁 최고위원은 “한 대표는 (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한다는 것”이라며 “다만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 역학관계를 봤을 때 당내 합의 없이 한 대표가 일방적으로 제3자 추천 방식의 특검법을 추진했을 때 심각한 내홍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한 대표의 당 장악력이 그 정도가 되지는 못한다는 얘기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과 여권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우물쭈물하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사실 대법원장 추천의 제3자 추천 특검법은 중립적 특검의 보장이라는 면에서 여당으로서는 명분이 있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립적 특검조차도 결국은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이라는 여권 내부의 판단 속에서 과감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이 여권의 현실이다. 이는 작금의 여권세력이 얼마나 민심과 유리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러한 여당의 모호한 태도는 야당으로 하여금 새로운 특검법을 재발의할 명분을 스스로 제공하는 셈이다. 야당들이 변형된 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한 데는 한동훈 대표의 제안을 구실로 여권의 분열을 낳으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에 야당들이 재발의한 새 특검법도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는 통과시키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소모적인 핑퐁게임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도 답답한 노릇이다. 명령에 따라 구조활동을 하다가 사망한 해병대원의 사망 경위와 책임, 그리고 수사 외압 의혹 등은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끝날 사안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에는 그렇게 막는다 해도 다음 정권에서는 다시 수사가 될 사안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자신의 임기 중에 이 의혹에 대해 투명하고 말끔한 결론을 내리고 가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의혹을 일시적으로 덮는다고 덮여질 수 없음은 우리 정치사가 충분히 보여준다.

여당은 여당대로 순직 해병대원의 사망 경위와 책임을 가리는 것을 회피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여야 합의에 의한 특검의 성사보다는 대여 압박의 공세로 삼는 모습이다. 용산과 여야 정치권은 채 상병 순직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과연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