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방통위원장 탄핵 공방 …국민은 구경꾼 신세
2024-08-06 23:51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탄핵 당하고 여야 대치의 중심에 서는 인물이 됐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 위원장은 취임한 지 이틀 만에 직무 정지가 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고, 헌법재판소가 최종 선고를 내릴 때까지 방통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이 위원장이 방통위원장에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판단에 상관없이 우선 야당들의 ‘무한 탄핵’을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모두 18건의 탄핵안을 발의했는데, 22대 국회 들어 추진한 탄핵안만 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만 4건을 발의했다. 이진숙 위원장에 앞서 탄핵안이 발의됐던 이동관·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장 직무 대행은 자신의 탄핵안이 국회에 표결되기 전 자진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하면 즉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고, 그래서 방통위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해 당사자가 사퇴하니 다른 인물을 다시 임명하게 되고, 그러면 야당은 또다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는 초유의 장면이 연출되어 온 것이다.
탄핵 압박에 밀려 자진 사퇴했던 전임 위원장들도 헌법에서 탄핵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위배가 확인된 것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들을 그냥 놔두면 공영방송 이사진을 재편하여 여권 우위의 이사회를 만들고, 결국 친여 성향의 경영진이 들어서는 상황을 야당이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러니 법률적 사유에 근거한 탄핵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로서의 탄핵이 되었고, 이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탄핵 제도가 존재하는 본래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특히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가 불과 취임 이틀 만에 이루어진 상황은 상식 밖의 일이다. 막 출근을 시작한 방통위원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을 했을까. 이 위원장은 출근을 시작한 당일 김태규 부위원장과 회의를 소집하여 조만간 임기가 끝나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새 이사진 임명 안건을 의결했다.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6명을 우선 임명하고 나머지는 야권 추천 몫으로 남겨놨다. 또한 임기 종료를 앞둔 KBS 이사회의 새 이사 7명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방통위가 2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여야의 책임 공방은 계속되어 왔지만, 그렇다고 2인 회의를 소집하여 공영방송 새 이사들을 임명 혹은 추천한 것을 ‘위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의 제안설명에서 민주당 소속 김현 의원이 했던 "총선의 결과도 외면한 채 방송장악을 멈출 생각이 없는 윤석열 정권에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계속 전달하기 위해 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한 방통위원장 이진숙을 통한 탄핵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이번 탄핵 소추가 정치적 성격의 탄핵이었음을 스스로 밝힌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야당들의 반대와 비토의 배경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야당들의 입장에서는 과거 보수정부 시절 MBC가 ‘정권의 방송’ 노릇을 하는 데 앞장섰던 인사가 방통위원장이 되는 사태를 어떻게든 막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틀간의 재임 중에 탄핵할 정도의 위법한 행위가 없었다면 탄핵 소추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정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에 상관없이 법치를 위해 이는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돌아보면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1년 안에 공영방송들을 여권 우위의 구조로 만들기 위해 KBS 고대영 사장과 강규형 이사 등을 해임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후일 대법원에서 ‘위법한 해임’이었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그랬던 민주당이 지금은 공영방송이 여권 우위의 구조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탄핵을 남발하는 모습은 결국 ‘내로남불’이다.
그러나 야당이 아무리 막가는 정치를 한다고 해서 윤 대통령의 부적절한 인사에 눈감을 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방통위원장 임명을 놓고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하필이면 ‘강성 우파’의 이념을 갖고 있는 이진숙 위원장을 임명하여 야당들을 자극하고 여론의 불리함을 자초했는가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원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를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과 관련해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 후보자는 최민희 위원장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강제인가 자발인가”라고 묻자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추궁에 이 후보자는 “논쟁적 사안이라는 것은 취소한다”면서도 “개별적 사안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극단적인 우파 이념을 가진 뉴라이트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었다.
기자 이진숙은 1990년대 초반 걸프전 때 첫 여성 종군기자가 되었고 2003년 이라크전 전장에서도 미군의 공습을 보도하여 주목받았던 언론인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MBC 노조의 파업에 동참하는 등의 입장에 섰지만, 간부가 되면서부터는 입장을 전혀 달리했다. 특히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에는 강경한 반(反)노조 입장을 고수하여 MBC 기자협회에서 제명당하기도 했고, 고 이용마 기자 등을 해고하는 데 앞장섰다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래서 쌓여온 이진숙 위원장의 이미지는 ‘강성 우파’였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2021년 8월 윤석열 대선캠프에 언론특보로 참여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캠프 기조와 결이 다른 강경 발언들을 쏟아내다가 논란을 빚어 일주일 만에 해촉되기도 했다. 그가 MBC 보도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MBC는 보수정권의 입장에 편향된 보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투사’ 이미지가 강한 이 위원장을 방통위원장에 중용하는 것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따르게 된다. 방통위원장이 임명만 되면 족족 탄핵하려는 민주당의 해괴한 정치를 비판하다가도 막상 윤석열 정부가 하는 인사도 마땅치 않기에 우리는 난파선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고 만다. 어째서 윤석열 정부는 언제나 ‘그때 그 사람’이 아닌 새 인물들을 중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독일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책 <난파선과 구경꾼>에는 “폭풍우 속의 바람이 파도를 뒤집어 엎을 때, 해안에 서서 남이 난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는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말이 소개된다. 자기가 있는 장소의 안전함에 안도하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마땅히 배에 승선하여 제대로 운항하게 만들 책임이 있지만, 정치적 난파선에 올라탈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도 지지하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을 고작 싸움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킨 우리 정치는 여야를 불문하고 성찰의 윤리를 되찾아야 한다.
이 위원장이 방통위원장에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판단에 상관없이 우선 야당들의 ‘무한 탄핵’을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들어 모두 18건의 탄핵안을 발의했는데, 22대 국회 들어 추진한 탄핵안만 7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만 4건을 발의했다. 이진숙 위원장에 앞서 탄핵안이 발의됐던 이동관·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위원장 직무 대행은 자신의 탄핵안이 국회에 표결되기 전 자진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하면 즉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고, 그래서 방통위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해 당사자가 사퇴하니 다른 인물을 다시 임명하게 되고, 그러면 야당은 또다시 탄핵 소추안을 발의하는 초유의 장면이 연출되어 온 것이다.
탄핵 압박에 밀려 자진 사퇴했던 전임 위원장들도 헌법에서 탄핵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위배가 확인된 것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들을 그냥 놔두면 공영방송 이사진을 재편하여 여권 우위의 이사회를 만들고, 결국 친여 성향의 경영진이 들어서는 상황을 야당이 막으려 한 것이다. 그러니 법률적 사유에 근거한 탄핵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로서의 탄핵이 되었고, 이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탄핵 제도가 존재하는 본래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특히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가 불과 취임 이틀 만에 이루어진 상황은 상식 밖의 일이다. 막 출근을 시작한 방통위원장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을 했을까. 이 위원장은 출근을 시작한 당일 김태규 부위원장과 회의를 소집하여 조만간 임기가 끝나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새 이사진 임명 안건을 의결했다.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6명을 우선 임명하고 나머지는 야권 추천 몫으로 남겨놨다. 또한 임기 종료를 앞둔 KBS 이사회의 새 이사 7명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방통위가 2인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여야의 책임 공방은 계속되어 왔지만, 그렇다고 2인 회의를 소집하여 공영방송 새 이사들을 임명 혹은 추천한 것을 ‘위법’이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의 제안설명에서 민주당 소속 김현 의원이 했던 "총선의 결과도 외면한 채 방송장악을 멈출 생각이 없는 윤석열 정권에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계속 전달하기 위해 정부의 거수기로 전락한 방통위원장 이진숙을 통한 탄핵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이번 탄핵 소추가 정치적 성격의 탄핵이었음을 스스로 밝힌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야당들의 반대와 비토의 배경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야당들의 입장에서는 과거 보수정부 시절 MBC가 ‘정권의 방송’ 노릇을 하는 데 앞장섰던 인사가 방통위원장이 되는 사태를 어떻게든 막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틀간의 재임 중에 탄핵할 정도의 위법한 행위가 없었다면 탄핵 소추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정인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에 상관없이 법치를 위해 이는 지켜져야 할 원칙이다. 돌아보면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1년 안에 공영방송들을 여권 우위의 구조로 만들기 위해 KBS 고대영 사장과 강규형 이사 등을 해임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후일 대법원에서 ‘위법한 해임’이었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그랬던 민주당이 지금은 공영방송이 여권 우위의 구조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탄핵을 남발하는 모습은 결국 ‘내로남불’이다.
그러나 야당이 아무리 막가는 정치를 한다고 해서 윤 대통령의 부적절한 인사에 눈감을 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방통위원장 임명을 놓고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하필이면 ‘강성 우파’의 이념을 갖고 있는 이진숙 위원장을 임명하여 야당들을 자극하고 여론의 불리함을 자초했는가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위원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를 하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과 관련해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취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 후보자는 최민희 위원장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강제인가 자발인가”라고 묻자 “논쟁적 사안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추궁에 이 후보자는 “논쟁적 사안이라는 것은 취소한다”면서도 “개별적 사안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극단적인 우파 이념을 가진 뉴라이트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었다.
기자 이진숙은 1990년대 초반 걸프전 때 첫 여성 종군기자가 되었고 2003년 이라크전 전장에서도 미군의 공습을 보도하여 주목받았던 언론인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MBC 노조의 파업에 동참하는 등의 입장에 섰지만, 간부가 되면서부터는 입장을 전혀 달리했다. 특히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에는 강경한 반(反)노조 입장을 고수하여 MBC 기자협회에서 제명당하기도 했고, 고 이용마 기자 등을 해고하는 데 앞장섰다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래서 쌓여온 이진숙 위원장의 이미지는 ‘강성 우파’였다. 실제로 이 위원장은 2021년 8월 윤석열 대선캠프에 언론특보로 참여했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캠프 기조와 결이 다른 강경 발언들을 쏟아내다가 논란을 빚어 일주일 만에 해촉되기도 했다. 그가 MBC 보도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MBC는 보수정권의 입장에 편향된 보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보수 진영의 ‘투사’ 이미지가 강한 이 위원장을 방통위원장에 중용하는 것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따르게 된다. 방통위원장이 임명만 되면 족족 탄핵하려는 민주당의 해괴한 정치를 비판하다가도 막상 윤석열 정부가 하는 인사도 마땅치 않기에 우리는 난파선을 지켜보는 구경꾼이 되고 만다. 어째서 윤석열 정부는 언제나 ‘그때 그 사람’이 아닌 새 인물들을 중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독일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책 <난파선과 구경꾼>에는 “폭풍우 속의 바람이 파도를 뒤집어 엎을 때, 해안에 서서 남이 난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는 로마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말이 소개된다. 자기가 있는 장소의 안전함에 안도하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 것이다. 우리 시민들은 마땅히 배에 승선하여 제대로 운항하게 만들 책임이 있지만, 정치적 난파선에 올라탈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도 지지하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을 고작 싸움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킨 우리 정치는 여야를 불문하고 성찰의 윤리를 되찾아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