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얼어붙자 빚 내서 비아파트 공급 나서는 정부… "결국 과부화, 규제 풀어야"

2024-09-05 06:15

서울 시내 빌라 등 주거단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전통적인 주거 사다리로 꼽히는 빌라(연립·다세대주택) 등 비(非)아파트 시장 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세사기 여파로 거래가 줄고 공급이 급감하는 등 최악의 침체를 겪고 있는 비아파트 시장을 빠르게 정상화하기 위해 공공주택 무제한 공급과 세제 혜택 카드를 꺼내 들었다.

비아파트 공급을 위해 당초 2027년까지 낮추려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채비율도 확대를 추진한다. 민간 시장이 크게 위축된 만큼 공공에서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시장을 회복시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은 긍정적이지만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민간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국 비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2만1439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동기(3만2601가구) 대비 34.2% 감소한 수치다. 같은 기간 착공(2만6754가구→2만184가구)과 준공(4만1755가구→2만6131가구) 물량도 각각 24.6%, 37.4% 줄었다. 주택 공급과 관련한 대표적인 지표로 여겨지는 인허가·착공·준공 물량이 모두 1년 새 급감한 것이다.

그동안 비아파트는 서민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주거 기회를 제공하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전세사기와 역전세 문제로 인해 수요가 급격히 얼어붙었고, 사업성이 악화하며 민간의 비아파트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8일 대책 발표를 통해 비아파트 공급자에게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2025년까지 신축 예정인 빌라 11만가구 이상을 LH가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분양 리스크를 정부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것이다. 

특히 비아파트 신축 매입을 통한 공급을 위해 LH 부채비율도 확대한다. LH는 현재 기획재정부 등 정부와 2027년까지 208%로 낮춰야 하는 부채비율을 2028년까지 233%로 변경하는 것을 협의하고 있다. 주택 공급 부족으로 LH 역할이 계속해서 커지자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세운 지 1년여 만에 부채비율을 늘리는 것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와 함께 비아파트 수요를 진작하기 위해 취득세·양도세 등 세제 혜택과 청약 혜택도 확대한다.

전문가들은 비아파트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정부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공공에서 재정을 투입하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과부하가 올 수밖에 없는 만큼 민간에서 공급과 수요가 살아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정부가 무너지고 있는 비아파트 시장을 살리기 위해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면서 "그러나 공공이 이끄는 정책은 재정 부담 등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시장을 완전하게 회복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비아파트 시장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인해 시장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이라며 "정부 측 의도처럼 무주택자가 소형 비아파트를 발판으로 삼아 아파트 청약에 나서거나 유주택자가 임대사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대출, 세금 문제 등 관련 규제들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미국 IAU 교수)은 "현재 개인이 비아파트를 매입하는 수요가 작은 만큼 임대사업자들이 매입하도록 하는 촉진책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LH 등이 매입 규모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예산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공급 비중을 무한정 늘리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민간에서 비아파트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나온 정책으로는 부족하다"며 "단기등록임대 부활, 민간임대주택 제도 합리화 등 후퇴했던 민간임대에 대한 혜택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