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의 팩트체크] 텔레그램 CEO 체포가 쏘아올린 공…"표현의 자유" vs "범죄온상"

2024-08-27 17:52
'유포자 미상' 가짜뉴스 횡행하기 좋은 환경..."텔레그램, 왓츠앱 대비 여과 노력 부족"

텔레그램 로고 [사진=AFP 연합뉴스]


텔레그램 창업자 파벨 두로프의 체포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영상 합성)로 만든 가짜음란물 등 불법 콘텐츠의 유통 창구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활발한 표현이 오가는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26일(이하 현지시간)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자사 서비스가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로 23일 프랑스 당국에 체포됐다.  
 
텔레그램은 개인 통신비밀 보호 등 뛰어난 보안성이 특징이다. 수사기관이 범죄 관련 정보를 요청해도 응하지 않을 정도다. 이 때문에 러시아, 이란, 인도, 홍콩 등 언론 자유에 제약이 있는 국가에서 정부에 비판적 기사를 공유하거나 주장을 펼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조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본인 엑스 계정에 해시태그 ‘프리파벨(FreePavel)'을 내걸었다.
 
반면 텔레그램의 높은 보안성은 범죄의 창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정보 유포자를 확인할 수 없어 허위 정보, 음모론, 혐오 유발 등 유해 정보 확산에 취약하다. 이미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범죄 관련 소식을 전달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영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극우단체 시위도 텔레그램을 통해 조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최근 N번방 사건에 더해 텔레그램을 통해 딥페이크 음란물이 유포되는 사건이 확산되자 관련 당국이 강력한 대응을 논의 중이다. 기술 전문가 던컨 클라크는 CNN에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된 소통 앱은 누군가에겐 언론의 자유이지만 또 다른 이에겐 다크웹(접속 허가가 필요한 네트워크로 범죄의 통로로 유용되는 공간)으로 가는 진입로”라고 평가했다.
 
텔레그램 측은 자사가 유럽연합(EU) 등이 요구하는 보안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하지만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 아동 성착취를 연구한 데이비드 티엘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AP통신에 텔레그램이 다른 메신저보다 보안성이 낮고 불법 콘텐츠에 대한 대책과 단속이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경쟁 메신저 왓츠앱은 지난해 130만건 이상 아동 성착취 관련 감지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텔레그램은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2022년 독일은 텔레그램이 불법 콘텐츠를 신고할 합법적 방법을 마련하지 않아 벌금 500만 달러(66억원)를 부과하기도 했다.
 
텔레그램 기능의 양면성 때문에 두로프 체포에 대한 국가 간 입장도 나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사건으로 서방의 언론 자유를 대하는 입장이 이중적이라고 꼬집었다. 러시아 영사는 전날 두로프에 대해 접근을 요청했으나 프랑스 당국에 퇴짜를 맞은 바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엑스 등 공개 채널로 두로프 체포가 정치적 결정이 아니며 텔레그램이 기본권 보호에 소홀했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