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잣집 자식에 밀리는 지방인재…한은 "해법은 지역비례 선발"

2024-08-27 14:00
한은, 입시경쟁 해결할 대입제도 개편안 제안
강남 고소득층 학생, 입시서 잠재력보다 성과 좋아
부모 경제력 효과 75%·거주지역 효과 92% 추정
서울대부터 지역별 비율 정해 신입생 뽑자 주장

지역별 일반고의 서울대 진학률: 실제 진학률과 학생 잠재력 기준 추정치 비교 그래프. [표=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입시경쟁 과열로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해법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라는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다. 상위권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선발기준이나 전형방법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다.

서울 거주 학생의 역차별이나 대학 내 학업 성취 하향 평준화 우려, 상위권 대학의 수도권 집중화로 오히려 수도권 인구 쏠림이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은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은은 지역별 비례선발제야말로 가장 빠르고 적은 비용으로 '잃어버린 인재(Lost-Einsteins)' 현상을 줄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 소개했다. 
강남 고소득층 학생, 입시경쟁서 잠재력보다 성과 좋아
27일 한은 경제연구원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입시경쟁 과열은 사교육 부담 및 교육기회 불평등 심화, 사회역동성 저하, 저출산 및 수도권 인구집중, 학생의 정서불안과 낮은 교육성과 같은 우리나라의 구조적 사회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입시경쟁은 소득수준과 거주지역에 따른 교육기회 불평등을 부추겼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구원의 조사 결과 2023년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총액은 27조1000억원으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14%나 차지했다. 사교육 참여율은 78.5%로 각각 역대 최고치다. 게다가 사교육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월 100만원 이상을 사교육비로 지출한 고등학생의 비중은 고소득층과 서울지역에 집중됐다.

소득수준과 거주지역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는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상위권대 입학생의 서울 출신 쏠림현상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일반고 졸업생 분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서울 출신 학생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 중 16%인데 서울대 진학생은 32%를 차지했다. 강남 3구로 좁히면 쏠림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강남 3구 학생은 전체 졸업생 중 4%에 불과한데 서울대 진학생은 12%에 달했다.
 
월평균 사교육비, 고3 학생의 소득수준별 상위권대 진학률, 일반고 졸업생 중 서울대 진학생의 지역별 분포. [표=한국은행]
부모 경제력 효과 75%·거주지역 효과 92% 추정
한은은 이런 현상을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으로 해석했다. 어린 시절 수학성취도 점수를 인지능력을 잠재력을 대리하는 변수로 사용해 자체 실증분석을 해 본 결과 사교육 중심지에 거주하는 고소득층 학생이 상위권대 입시에서 자신의 잠재력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잠재력 기준 서울대 진학률은 각각 0.50%와 0.39%로 1.3배 차이지만 실제 진학률은 각각 1.53%와 0.16%로 9.6배 차이에 달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80% 간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75%는 학생 잠재력 이외 '부모 경제력 효과'의 결과이며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의 92%는 부모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 등을 포괄하는 '거주지역 효과'에 기인한다고 한은은 추정했다.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여러 차례의 대입제도 개편에도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가 여전히 지속되는 만큼 이를 완화하기 위한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별 고3 학생 비율 '0.7배이상 1.3배이하' 제한
입시경쟁 문제를 풀기 위해선 상위권 대학이 자발적으로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별 합격자 비율을 고3 학생 비율의 '0.7배이상 1.3배이하'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는 2002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안한 '지역 할당제' 취지와 김세직 서울대 교수가 제안한 '비례경쟁 선발 입시제도'와 궤를 같이 한다. 

서울대의 지역균형전형 등 일부 대학에서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제도는 입학정원 대부분에 확대 적용한다. 정원외 선발이 아닌 만큼 낙인효과가 적고 대학이 신입생 선발기준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서울대 지역균형전형 및 기회균형특별전형과 차이가 있다.

지역별 합격자 비율이 고3 학생 비율의 '0.7배이상 1.3배이하'가 되도록 규칙을 적용하면 지역의 실제 서울대 진학률과 잠재력 기준 진학률 간의 격차가 현재보다 64%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서울대 진학률과 잠재력 기준 진학률 간 기존 격차는 0.14%포인트였는데 0.05%포인트까지 줄어든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 거주 학생의 역차별이나 대학 내 학업 성취 하향 평준화 우려, 상위권 대학의 수도권 집중화로 오히려 수도권 인구 쏠림 등의 문제는 지역별 비례선발제의 한계점으로 꼽힌다. 

이 실장은 "지역 간 소득수준과 사교육 환경 차이로 인한 입시 영향을 줄여 지방인재를 발굴하고 대학 내 다양성을 확대하여 교육적 이점을 얻으며, 입시경쟁을 지역적으로 분산시켜 사회문제를 완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서울대 지역균형전형과 기회균형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성적이 타 전형 학생과 대등하다는 사실은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잠재력 있는 학생을 잘 선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