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한중수교 32주년… 관계회복의 전환점 되길
2024-08-25 18:49
한·중 수교 32주년을 맞이해 시장조사차 베이징∙톈진∙지난∙우한∙허페이 등 중국 내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다. 현지 공무원, 학자, 기업인, 시민 등 각계각층의 인사를 만나 그들의 한·중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여전히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지난 1년간 일본으로 유학을 간 중국 학생이 10명 이내인데 한국으로 유학가는 중국 학생이 800명을 넘어요. 여전히 학부모와 학생들이 한국 유학을 많이 선호합니다." 후베이성 우한에서 한국∙일본유학 전문 유학원을 운영하는 한족 여성 CEO가 필자한테 한 말이다.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한·중 간 정치·외교·이념의 갈등 속에 양국 관계가 비록 소원해졌지만 민간 협력과 교류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 사드 사태를 기점으로 냉각되기 시작한 한·중 관계의 불편한 동행은 결국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외교안보구도 속에 더욱 심화되었다. 양국 간 갈등과 소통의 부재는 정치∙외교∙이념을 넘어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정책기조는 자연스럽게 ‘친미반중’의 여론으로 형성되며 양국 간 경제무역 및 민간 교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정부의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조짐들이 여러 군데서 감지된다. 지난 5월 4년 5개월 만에 개최된 한∙일∙중 정상회의 기간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문화, 인적 교류 및 경제통상협력 관련 각종 행사가 재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내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세부 요인들을 살펴보면 첫째,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협력이 확대되면서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중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 밀착은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이며 역으로 한·중 관계를 이용하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이다. 둘째, 11월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가 회귀할 가능성에 사전에 대비하는 동인이 작동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미∙중, 한∙중, 북∙미, 한·미·일 외교정책의 지형이 변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개선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 중국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편향된 경제·기술 동맹이 한·중 경제 관계에 부정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넷째,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제1교역국이었던 중국 비중이 점차 하락하면서 한·중 간 무역 상호의존도 관계가 더욱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국산화 정책과 기술자립 가속화뿐만 아니라 한·중 관계 악화라는 정치적 요인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흉내만 내는 한·중 관계 개선이 아닌 향후 한·중 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노력과 방법론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첫째, 무게중심이 다른 대중 외교가 아니라 실사구시에 기반한 미국∙중국∙일본의 균형외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해외에 파견된 KBS 특파원은 크게 기자 특파원과 PD특파원으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기자특파원이 뉴스 제작에 중심을 둔다면 PD 특파원은 국제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 제작뿐만 아니라 파견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상기록과 데이터를 축적하는 아카이브 제작자 역할도 수행한다. KBS PD특파원은 전 세계 미국∙중국∙일본 및 프랑스 등 4개국에만 있다. 우리 입장에서 미∙중∙일∙유럽이 정치, 외교, 경제 등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및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4개국 중 중국 PD특파원 자리만 사라졌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본 NHK의 중국 PD특파원도 있는데 우리 KBS 중국 PD특파원 자리만 없어진 것이다. 당연히 G2의 중국 정부가 좋아할 리 없다. 중국은 복수의 나라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君子报仇 十年不晚)’라는 중국 속담이 떠오른다. 향후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이에 대한 불만과 복수를 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중 관계 악화의 또 다른 조그마한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급변하는 중국 곳곳의 모습을 담은 영상기록과 데이터가 구축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정확한 대중국 전략 수립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 한·중 관계가 미·중 간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가 되어야 한다. 작년 12월 말 대한상공회의소와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CCIEE)가 공동 주최한 ‘제4회 한·중 경제 고위인사 대화’가 개최되었다. 양국 경제계가 모여 논의된 한·중 경제협력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양국 정부에 건의하기로 합의도 했다. 한·중 경제계가 합의한 한·중 경제협력 과제는 ①RCEP 등 다자간 협력 강화 ②AI·반도체·전기차 등 유망 산업 지원 ③제약·바이오 상호 인증, 공동연구협력 ④스마트화로 새 부가가치 창출 ⑤그린산업에 첨단기술 도입 ⑥문화 분야 개방 확대이다. 문제는 양국 경제계가 제안한 6가지 영역의 한·중 경제협력 확대에 대해 우리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치 않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는지가 궁금하다. 6가지 영역 중 AI∙반도체∙바이오∙그린산업 등 4가지 분야는 미·중 간 디커플링의 대표적 영역이다. 해리스든 트럼프든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든 미국의 대중국 제재와 압박은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특히 트럼프가 회귀할 경우 미국의 대중국 제제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도록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한·중 관계는 미·중 양국 간 힘의 대결 속에 결코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와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 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 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