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쓸데있는 금융백과] 법정최고금리 향한 엇갈린 시선들
2024-08-21 07:00
금융당국이 불법사금융과의 대대적인 전쟁을 선포했지만, 고금리·불경기 흐름 속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에 노출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법정최고금리를 인하해 서민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선 되레 불법 음성시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반발한다. 최고금리가 무엇이길래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리와 금융취약계층의 제도권 이탈을 연결해 보고 있는 것일까.
7차례 내리기만 했는데···고금리 속 흔들리는 최고금리
법정최고금리는 법에서 정하는 가장 높은 금리를 말한다. 금융회사나 대부업체가 폭리를 취하지 않도록 일종의 금리 상한선을 정해둠으로써 금융소비자가 지나치게 높은 이자로 인해 경제적인 부담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제도다. 최고금리를 넘어 이자를 받는 것은 불법이며, 법적 초과 이자분은 상환 의무가 없다. 또 고리대금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예금이 아닌 대출에서만 적용된다.과도한 이자를 제한하는 제도는 1962년 처음 도입됐다. 이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사라졌다가 불법사금융의 폐단이 다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2002년 말 66%의 최고금리가 제정됐다. 2018년 이자제한법 부활과 함께 최고금리는 30%로 떨어졌고, 지난 2021년 1월에 현재의 최고금리 수준인 20%가 정해지게 됐다.
최고금리가 불법사금융과 연결되는 것은 금리 상한 수준에 따라 금융취약계층이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가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 최고금리 인하로 금융소비자들은 과도한 빚에 시달리지 않게 됐고, 전반적인 금리 수준이 낮아지면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도 가져올 수 있었다. 과도한 금리 부담을 지우지 않으니 시장에선 금융사와 소비자 간 신뢰가 쌓였다.
하지만 고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제도권 금융 내 대부업체들은 은행보다 금리는 높아도 당장 돈을 빌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금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금리가 뛰면서 대부업체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연체율도 급등하기 시작해 사실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정상적으로 회사를 영위할 수 없게 된 대부업체들은 하나둘씩 대출 영업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이들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됐다.
실제로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업 이용자의 10.6∼23.1%가 불법사금융에 유입된 것으로 예상했다. 서민금융연구원에서도 최고금리 인하 이후 지난 6년간 대부업 대출이 거절돼 불법사금융으로 넘어간 금융취약계층이 58만명에 육박할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野 "더 내리자" 주장에 금융권 반발···신중한 금융당국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선 최고금리를 더욱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민들을 고금리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달 4일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현 20%보다 5%포인트 낮은 15%포인트로 통일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재 대통령령으로 최고금리가 20%로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이자제한법상 미등록 대부업자의 25%, 대부업법상 대부업자 연 27.9%의 최고금리 수준도 모두 인하해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라고 말한다. 서민들은 높은 금리에도 당장 급전이 필요해 돈을 빌리려고 하지만 2금융권에서는 역마진 등을 이유로 대출 영업을 자의적으로 멈춘 상황이다. 여기에 최고금리까지 낮추면 2금융권은 서민금융 자금 공급 역할을 잃어버리게 돼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서민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학계에서는 최고금리를 시장금리와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고위험 대출시장의 금리를 연 133%로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법정 최고금리를 두지 않고 당사자 간 이자율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역시 최고금리 규정은 두지 않고 있지만, 폭리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법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앞서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대상에 올려두기도 했지만, 여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동형 최고금리 제도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 하나"라며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