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도 뛰어든 보험사기] "내가 잘 아니까 괜찮아"…금감원, 94명 무더기 제재

2024-08-14 06:00
보험금 편취 규모 20억원…34명 등록취소·59명 영업정지 중징계
종사자 적발 규모 2년 새 51% ↑…국회서 행정절차 간소화 논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험사기에 가담한 보험업 종사자들이 무더기로 금융감독원의 철퇴를 맞았다. 금융감독 현장에서는 보험설계사 등의 보험사기 적발 건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사법절차가 끝난 뒤 이어지는 금융당국의 행정제재 절차가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에서는 이를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도 발의됐다.

13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달 보험설계사 94명이 보험사기 연루행위 금지의무를 위반해 금감원 제재를 받았다. 이들이 보험사기를 통해 보험사로부터 편취한 금액은 20억4170만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이 중 34명에게 등록취소, 59명에게 영업정지(최대 180일) 처분을 내렸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업 종사자들이 보험사기를 설계하거나 가담하는 행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보험금 지급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들이 허점을 파고들어 보험사와 다른 보험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다.

보험사기에 연루되는 보험설계사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사기 행각을 벌이다 적발된 사람 중 보험업 모집종사자는 2021년 1178명에서 2022년 1598명, 지난해 1782명으로 2년 사이에 51.3% 급증했다. 이 기간 전체 보험사기 적발 인원이 9만7629명에서 10만9522명으로 12.2%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증가세가 매우 가파르다.

금감원도 보험업 종사자들의 부정 행위를 막기 위해 행정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복잡한 사법·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금감원의 등록취소·영업정지 등 제재는 법원 확정판결 이후 이뤄진다. 보험 전문가들의 사기에 민감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보험사기 적발에서 행정처분까지 이어지는 절차가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정제재를 위한 청문절차 등에 행정력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보험사기를 저지른 보험설계사도 제재가 확정되기 전까지 보험영업을 할 수 있어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기를 저지르고 10년이 지난 뒤에 제재가 확정된 웃지 못할 사례도 나온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검찰·법원 등에서 보험사기가 객관적으로 증명되면 즉시 등록을 취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최근 발의됐다. 행정제재를 위한 청문절차를 생략해 절차의 효율성을 확보하고 보험사기 예방조치를 더욱 강화하자는 취지다.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보험에 대한 전문지식을 보유한 보험설계사를 비롯한 보험업 종사자의 사기·범죄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의 적시성을 확보하고 강력한 제재를 통한 범죄 예방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대형보험사·보험대리점을 막론하고 보험사기에 대한 소속 설계사들의 경각심을 높이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더해 보험설계사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종사자 등 업무적 전문성을 악용해 보험사기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행정제재·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