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열고, AS 브랜드 만들고" 배터리왕 CATL의 車心 공략 이유

2024-08-12 14:56
공급과잉 위기···브랜드 가치 높여 활로 모색
소비자 공략···브랜드 이미지 강화 나선 CATL 
美 인텔 모방한 'CATL 인사이드' 전략

2023년 4월 중국 상하이 모터쇼 행사장에서 관객들이 CATL 로고가 붙여진 광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1만4000㎡(약 4200평) 면적의 2개층으로 된 전시장 곳곳이 CATL 로고로 가득하다. 아이토·니오·훙치 등 중국차 브랜드부터 BMW·아우디 등 외제차까지 모두 41개 전기차 브랜드의 70여종 모델이 전시됐다. 전시 차량의 공통점은 모두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는 것. 곳곳에 배치된 CATL 유니폼 차림의 전문 서비스 직원이 CTAL의 최신 배터리 제품은 물론 각종 전기차와 배터리 정보를 상세히 설명해 준다. 관심 있는 전기차를 고르면 곧바로 딜러상과 연결도 가능하다. 1층에 마련된 카페에서는 '선싱(神行)', '차오충(超充)'처럼 CATL 배터리 제품명으로 작명한 커피를 판다. 
 
소비자 공략···브랜드 이미지 강화 나선 CATL 
 
10일 쓰촨성 청두시내에 오픈한 'CATL 신에너지 라이프 플라자' 전경. [사진=CATL 홈페이지]

지난 10일 중국 쓰촨성 청두 시내에 오픈한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 중국 CATL의 '신에너지 라이프 플라자'의 전경이다. 이곳은 CATL이 세계 최초로 만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체험 스토어다. 

리핑 CATL 부회장은 이날 오픈 행사에서 "자동차 회사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자동차 회사가 제품을 전시하도록 돕고, 소비자가 전기차를 선택하도록 돕기 위해 설립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CATL은 완성차 업체로부터 전기차의 매장 전시, 판매 딜러상 연결 등에 따른 수수료도 따로 받지 않는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CATL은 현재 완성차 업체 고객들이 전시 차량을 적극 제공하면서 향후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전시 차량도 업데이트한다는 계획이다. CATL은 올해 말까지 전시 차량을 100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사실 배터리 제조사의 주 고객층은 완성차 업체다. 이들 업체에 배터리를 제공하며 긴밀히 협업하는 B2B(기업간 거래) 사업을 한다. 하지만 최근 배터리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CATL은 이제 소비자와의 접촉점을 넓혀 CATL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美 인텔 모방한 'CATL 인사이드' 전략
CATL은 이날 신에너지 라이프 플라자 오픈과 함께 '닝자(寧家) 서비스'도 공식 발표했다. CATL의 애프터서비스(AS) 전문 브랜드다. 이를 위해 CATL은 전국 25개 성·시, 80개 도시의 112곳 서비스 업체와 '닝자 서비스' 가맹점 가입을 위한 전략적 협약도 맺었다. CATL은 9월 본사가 있는 푸젠성 닝더에 우선 '5성급' 제1호 직영 AS 매장을 개장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CATL은 이미 전국에 600개 이상의 AS센터를 운영하며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는 자사 제품을 납품하는 완성차 업체를 위해 AS 의무 계약을 이행하는 것으로, 실제 CATL이 수익을 내기는커녕 비용만 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직접 AS 시장에 진출해 고급형·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CATL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 고객을 대상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CATL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브랜드 홍보 전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회사 설립 이래 최초로 거액을 들여 100여곳 미디어를 초청해 오프라인으로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도시 공항이나 고속철역 인근에 자사 배터리를 홍보하는 광고판을 내건 게 대표적이다.

올 4월부터는 중국 최대 숏폼(짧은동영상) 플랫폼인 더우인(틱톡의 중국 버전)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주요 자동차기업 임원들을 초청해 소통하고 교류하는 등의 다양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B2B기업인 배터리 제조사로선 이례적인 행보다. 

'CATL 인사이드' 전략도 내걸었다. 올초 중국 둥펑자동차 오프로드 전기차 브랜드 '멍스(猛士)'와 협력해 CATL 배터리를 탑재한 차종에 'CATL 인사이드'라는 로고를 붙인 것. 이는 미국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이 과거 자사 칩을 넣은 PC는 믿을 만하다는 이른바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을 펼쳤던 것을 모방한 것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인텔이 최첨단 반도체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CATL이 둥펑 이외에 현재 여러 완성차 브랜드와 'CATL 인사이드' 협상을 하고는 있지만, 쉽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은 사실 이번 '신에너지 라이프 플라자'에서 전기차를 직접 판매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전기차 브랜드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결국 포기했다고도 차이신은 전했다.
 
공급과잉 위기···브랜드 가치 높여 활로 모색
B2B 기업인 CATL이 이처럼 소비자에게 자사 브랜드를 적극 홍보하고 나선 것은 중국 배터리 시장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소비자의 전기차 구매 결정에 CATL 브랜드 이미지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완성차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함이다.   

한때 CATL은 탄탄한 중국 정부 지원과 팽창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배경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대다수 자동차 회사들이 CATL 배터리를 구매하기 위해 사전에 보증금까지 지불해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배터리 품질이 차츰 향상되며 CATL을 대체할 만한 배터리 기업들이 생겨난 데다가, 자동차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배터리 생산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최근엔 배터리 공급 과잉, 리튬 가격 하락, 전기차 기업의 가격 인하 경쟁 등과 맞물리면서 CATL이 재고 압박에 시달리며 수익성 악화에 맞닥뜨렸다. 이제는 CATL이 자동차 업체에 배터리를 납품하기 위해 바짝 몸을 엎드려야 하는 신세가 된 것.

실제로 CATL의 매출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CATL의 올 2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 하락한 870억 위안(16조6100억원)을 기록했다. 3개 분기 연속 하락세를 기록한 것. CATL은 2021년, 2022년까지만 해도 매출이 2배 이상씩 급증했었다. 배터리 공급 과잉으로 CATL의 생산 가동률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CATL의 생산 가동률은 65.3%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5%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중국 자동차 컨설팅업체인 커보라 창업주 왕하오는 차이신을 통해 "전통적으로 자동차 부품사는 완성차 업체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게 일반적"이라며 "CATL의 브랜드 매장 오픈, 독자적 AS망 구축 등 B2C 전략으로 브랜드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자칫 지나치면 완성차 업체 고객의 불만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