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삼성 노사 갈등의 그늘, 협력사들의 조용한 한숨

2024-08-07 17:08
전삼노, 현업 복귀 하지만 '장기전' 예고
삼성전자 협력사 "생계 달려 있어" 우려
거대 노조라는 사회적 위치 자각할 필요

김민우 산업부 산업팀 기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거대한 두 존재의 싸움으로 힘없는 존재가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삼성전자가 없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국내 협력사들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총파업의 여파로 '반도체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도 피해가 크겠지만 가장 큰 피해는 당장 생계가 달린 협력사들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25일간의 총파업을 마무리 짓고 5일부로 현업에 복귀했다. 그러나 게릴라식 부분 파업과 사회적 이슈화, 주요 경영진 자택 앞 집결 등 '장기전'을 예고하며 갈등의 불씨를 남겨뒀다.

전삼노는 앞서 총파업의 최우선 목표를 생산 차질로 내세우며 파업을 이끌어왔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반도체 생산 공정의 기간이 통상 3주인 점을 고려할 때 실제 생산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노조와 회사 간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협력사들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와의 거래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이들이 받는 피해는 크다.

한 협력사 관계자는 "우리는 삼성전자의 생산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에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우리도 함께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우리가 가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여러 채널을 통해 파업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조와 회사 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단순히 삼성전자에 국한되지 않고 협력사와 그 직원들, 나아가 지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게 불 보듯 뻔하다.

파업에 참여한 노조 조합원들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금전 손실을 봤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파업으로 해고를 당하거나 회사가 문을 닫는 등 생계 걱정은 없다. 누군가는 임금 인상이 목표지만 누군가는 생계가 달려 있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의 최대 노조라는 본인들의 위치와 사회적 책임(USR)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생산 차질을 볼모로 내세우는 것만큼은 그만둬야 한다.

개별 노동자는 약자이지만 거대 노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용자와 거의 대등한 독점력을 가진 단체다. 이들의 행동에 따라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일부도 마비될 수 있다. 영향력을 가진 조직은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도 보여야 한다. 헌법의 노동 삼권만 외칠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명분과 실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현재,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라도 주변을 돌아볼 때다. 즉, 현실적인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이들의 행보에 협력사와 지역 경제의 운명이 달려 있다.

오랜 침체기를 지나 이제 막 회복의 불씨를 지피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협력사들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으면 국가 경쟁력까지 위태로워지는 것도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