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 '공포의 역주행' 참사…"급발진 운전자 진술일뿐"
2024-07-02 16:17
"남 일 같지 않아…진상 규명 반드시"
피의자 '급발진' 주장…경찰, 감식 의뢰
피의자 '급발진' 주장…경찰, 감식 의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9명의 생명을 앗아간 교통사고가 난 다음날인 2일 사고 현장엔 임시펜스로 부서진 안전펜스를 대체하고 있었다. 임시펜스 사이에는 곳곳에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 뭉치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엔 바퀴가 휘고 몸체가 처참히 찌그러진 오토바이 한 대가 간밤의 사고를 증명하듯 방치돼 있었다.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사고 현장은 꽤 정돈이 됐지만 가던 발길을 멈추고 전날 사고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시민들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참 사고 현장에 서 있던 임대천씨(77)는 "사고가 난 곳이 일방통행 길인데 어떻게 차가 반대 방향으로 달려왔다는 건지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변을 당했다던데 너무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그는 “30~50대 남성 9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막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아버지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역할을 해야 할 시기인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어떤 이유에서 발생한 사고인지 철저히 규명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날 저녁 9시 27분께 A씨(68)가 운전하던 제네시스 G80 차량은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후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하다 왼편 도로로 돌진했다.
A씨 차량은 교차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도로에 다다라서야 멈춰 섰다. 차량이 연기를 내며 스스로 멈추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놀라 몸을 피하는 장면이 CCTV와 블랙박스 영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A씨는 이번 사고로 갈비뼈 등을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다. 경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A씨가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방문조사도 검토 중이다.
정용우 서울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사망 사고를 낸 운전자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고 말했다.
A씨는 경기도 안산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시내버스 기사로 운전 경력이 40여 년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급발진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고 목격담과 블랙박스 영상 등에서 사고 차량이 구조물에 충돌하거나 전복되지 않고 스스로 제동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급발진이 아닐 가능성 역시 제기된 상황이다.
정 과장은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 상태를 비롯해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조사를 진행하면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다각도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급발진' 가능성에 대해선 "급발진 근거는 현재까지는 피의자(운전자) 측 진술뿐이고 급발진이라고 해도 적용 혐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며 "추가 확인을 위해 차량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해 가해 차량 EDR(자동차용 영상 사고기록장치·Event Data Recorder)을 분석하고 블랙박스 영상 등도 검증할 방침이다. 국과수가 차량 사고기록장치(EDR)를 분석하는 데는 통상 1∼2개월 소요된다.
한편 경찰은 당시 사고 현장에서 A씨가 도주를 시도하지 않았으며 음주 측정과 마약 간이검사를 한 결과 음주나 마약 흔적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추가 조사를 위해 채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희생자 시신은 서울 영등포장례식장(6명)과 신촌세브란스병원(1명), 국립중앙의료원(2명) 등으로 각각 옮겨졌다. 부상자 6명 중 4명은 서울대병원(2명)과 적십자병원(2명)으로 이송됐고, 2명은 경상이어서 귀가 조치되어 부상자로 추후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