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Story] 할랄 인증…득일까 독일까

2024-07-02 06:00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인도네시아 농촌에서 조사할 때였다. 모스크에서 마을 젊은이들과 한담을 나누던 중, 한 친구가 논에서 잡은 뱀장어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를 듣던 다른 친구가 종교적으로 허용된 음식에 뱀장어가 포함되는지를 묻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친구는 뱀장어가 뱀과 비슷하고, 뱀이 종교적으로 금지된 음식임을 지적하며 질문의 배경을 설명했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상황은 쉽게 종료되었겠지만, 당시는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기 훨씬 전이었다. 한동안 논의가 이어진 후, 이웃 마을에 사는 이슬람 지도자에게 이 문제를 확인해보기로 하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며칠 후 그 자리에 있던 친구가 답을 전해주었다. 생김새나 행동은 비슷해 보이지만, 뱀과 달리 아가미를 가진 뱀장어는 어류에 속하기에 식용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더 관심을 끌었던 사실은 젊은이들이 보인 태도였다. 외부인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을 문제에 관해 말하면서 이들은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모습을 취했다. 뱀장어 이야기를 처음 꺼낸 친구는 일시적이었지만 죄를 지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뱀장어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종교 교리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동식물의 활용은 특정한 규칙을 따르도록 정해 있는데, 우리에게도 조금은 친숙해진 아랍어 표현인 할랄(halal)은 종교적으로 허용된 대상을, 하람(haram)은 금지된 대상을 일컫는다. 돼지고기와 술은 금지된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대상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으로, 모든 동물이 할랄과 하람이라는 틀 내에서 평가되며, 금기시되는 동물 역시 상당수에 이른다. 개, 고양이, 사자, 원숭이, 뱀, 개구리, 쥐, 개미, 전갈, 독수리 등은 금지된 동물의 예이다.

특정 동물을 먹지 않도록 하는 규정에 추가하여 재료 준비 과정에도 일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허용된 동물이 살아 있을 때 도축해야 하고, 도축 역시 정해진 방식에 맞추어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할 때 할랄 재료로 인정받지 못한다.

음식과 관련된 포괄적 규칙은 이슬람 경전인 쿠란(Quran)에 기반을 두지만, 특정 동물의 허용·금지 여부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에 기초한다. 이로 인해 이슬람 학파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는데, 담배를 예로 들면, 해석에 따라 때로 금지 대상으로, 때로 주의 대상으로 규정된다.

음식 금기가 존재하기에, 이슬람 교리를 철저히 지키려 하는 무슬림에게 있어 동물 성분이 함유된 음식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대상이다. 일상적으로 접해 온 음식은 큰 문제가 있지 않겠지만, 뱀장어 사례와 같이 그 허용 여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새로 접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할랄 여부에 대해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무슬림의 식생활이 힘들고 복잡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지만, 현실의 일부만을 부각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는 사전 인지 여부를 중시하는 교리 해석 때문이다. 즉, 금지된 음식임을 알지 못한 채 먹는다면, 종교적 죄를 범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무슬림은 조심스럽게 음식을 선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긴장 상태로 음식물에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 사회에서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음식 소비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생활할 수 있었다. 돼지고기 회피 정도가 일상에서 지켜지는 금기였고 다른 음식과 관련해서는 개인적 선택이 중시되었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과 별 차이 없이 이루어지던 이들의 식생활은 1990년대를 전후하여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즐겨 먹는 면 요리의 재료인 완자에 돼지고기 성분이 섞여 있다는 보도가 대중적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믿고 먹던 음식에 금지된 성분이 포함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식음료의 성분을 검사하는 기관 설립을 약속했는데, 이것이 할랄 법제화의 시발점이었다.

할랄 여부를 검증하는 기관은 주요 이슬람 단체 지도자들이 구성한 연합체 산하에 만들어졌지만,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음으로써 반관반민의 성격을 띠었다. 설립 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었던 이 기관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 할랄 인증제 확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행하기 시작했다.

할랄 인증기관의 위상을 강화했던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금지된 성분이 포함된 음식 재료 관련 보도였다. 소규모 상인이나 식당에서 금지된 재료를 사용했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꾸준히 기사화되었고, 드물지만 외국 기업 제품 역시 위반 대상에 포함되기까지 했다. 일본의 조미료 제품인 아지노모토는 돼지고기 성분 검출로 인해 대규모 항의와 불매의 대상이 되었으며, 병행 수입된 한국산 라면이 할랄을 어겼다는 소문이 돌아, 한국산 라면 전체가 소매점 매대에서 사라지는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할랄 규정을 위반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무슬림 대중의 경각심은 배가되었다. 이는 할랄 식품 보장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고, 그 최종 결과물로 2014년 할랄제품보장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할랄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 대응, 처벌하려는 목적을 가진 할랄제품보장법은 무슬림이 다수를 구성하는 국가에서 제정된 첫 번째 통합 법안이었다. 전통적으로 이들 국가 대다수에서는 할랄 문제를 민간의 자율에 맡기는 경향을 보였고, 말레이시아와 같이 정부가 강하게 관여하는 곳에서도 기존 식품 관련 규정을 통해 규제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국가법을 제정하여 할랄 문제에 대처하려 한 인도네시아의 시도는 유례없는 행보라 평가될 수 있다.

참고할 만한 선례 없이 야심 차게 시작했기 때문에, 할랄제품보장법에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무엇보다 이 법의 대상이 되는 제품에 대한 정의를 식료품, 화장품, 의약품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상품으로 확대했다. 가죽 제품을 예로 들면, 가죽 소파나 가죽점퍼처럼 가죽을 주재료로 쓰는 제품에 더해 가죽이 극히 일부 사용된 제품 역시 인증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이처럼 과도할 정도로 포괄적인 규정으로 인해 5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2019년 법안이 제대로 발효될 수 있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수천만명에 달하는 소상공인의 제품이나 소규모 식당에 할랄 인증을 제공할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이 다가오자 할랄제품보장법을 시행할 환경이 구축되지 않았음에 다수가 공감했고, 법안 시행은 유예되었다. 이후 법안의 실행 가능성을 높일 몇몇 타협안이 제시되었다. 식물성 재료만을 사용하거나 화학 제품의 경우 할랄 인증이 면제되었고, 제품에 따라 시행 시기가 조정되었다. 식품의 경우 2024년 10월로 그 시기가 정해졌고, 화장품과 의약품은 2024년부터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리라 결정되었다.

할랄제품보장법 시행을 5개월여 앞둔 지난 5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소기업 제품을 대상으로 한 법 적용을 또다시 2년 연기했다. 제품에 대한 자가 검증을 허용하고, 등록 비용을 무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중소기업이 할랄 인증을 획득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수용한 것이다. 그 대신 정부는 대기업 제품을 대상으로 한 인증 정책은 계획대로 올 10월에 시작하리라 엄포를 놓았지만,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유예는 법 적용이 엄격하게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 예상할 수 있도록 한다.

법안 집행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인도네시아 정부는 보통 그 시행을 유예한다. 이러한 유연한 법 적용은 일반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법안 자체의 철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할랄제품보장법이 2년 후는 아닐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시행될 것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에게 있어 할랄 인증제는 비관세 무역장벽의 좋은 예이다. 인증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시간뿐 아니라 행정력이 요구되며, 인증이 불가능한 제품이라면 인도네시아 시장 진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의 위상이 높아져 가는 상황에서, 할랄 인증은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종교에 기반을 둔 장벽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할랄 인증은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무슬림이 다수를 구성하는 국가에도 향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인구의 24%, 대략 19억명이 무슬림임을 고려해보면, 할랄 인증 포기는 잠재력 높은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과 같다.

다음으로 고려할 측면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 충족이 기업의 책무로서 더욱더 중시되는 최근 상황이다. 안전한 먹거리의 주요 기준으로 종교가 이용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럼에도, 무슬림이 소비자의 일원이 되었을 때, 이들의 입장을 존중하려는 노력은 기업의 책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관련 기관의 노력을 통해 국내에서도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추가적 비용, 시간, 행정력의 투입은 여전히 요구되지만, 무슬림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이에 대처하려고 노력할 때, 이는 무슬림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어 K-푸드의 글로벌 확산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