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부터 윤석열까지 벌써 8번째…반복되는 제4이통사 불발의 역사
2024-06-21 06:00
2008년 첫 계획 발표…16년간 8차례 시도
재정 탓 번번이 통과 실패…KMI 6회 '고배'
政 허들 낮추며 진입 유도했지만 성과 없어
재정 탓 번번이 통과 실패…KMI 6회 '고배'
政 허들 낮추며 진입 유도했지만 성과 없어
스테이지엑스가 지난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에서 제4이동통신사 취소 통보를 받으며 '7전8기' 제4이통사 유치 작업이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갔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3개 이동통신 업체가 국내 통신 시장을 주도하는 체제가 장기간 이어지는 가운데, 처음으로 제4이통사 추진 계획을 발표한 지 16년째가 지난 지금까지도 별다른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제4이통사가 통신 시장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어 경쟁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높은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출 수 있는 확실한 카드라고 본다. 하지만 계속된 신규 사업자 공고와 정책적인 뒷받침에도 신규 사업자 확정에 실패한 데다가, 알뜰폰(MVNO)과 중저가 요금제 등 대안이 이전보다 많아진 만큼 제4이통사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2008년 공식화 '제4이통사' 계획
정부의 제4이통사 찾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8년이었다. 그해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제4이통사 정책 추진 계획을 밝혔다. 같은 해 12월 말 발표한 '2009년 방송통신 10대 추진과제'를 보면, 방통위는 2009년 하반기 중 800·900메가헤르츠(㎒) 대역의 일부 주파수를 회수해 후발·신규사업자에 재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했다. 이와 함께 휴대인터넷 '와이브로'에 '010' 번호를 부여, 음성전화 서비스 기능을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이통사업자 진출 가능성을 높였다.
당시 KMI는 모바일데이터음성통화(mVoIP)와 와이브로를 결합해 기존 통신사들보다 20% 더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KMI의 도전 속 방통위도 7월 2.5기가헤르츠(㎓) 대역의 40㎒ 폭 주파수를 와이브로 용도로 할당했다. KMI는 해당 주파수를 할당받아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월 방통위는 KMI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예견된 결과였다. 최대주주인 삼영홀딩스 등 몇몇 주주들이 6월 이후 지분 참여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새로운 주주들이 갑작스레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재무 상태가 불확실했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실패·실패 또 실패…문제는 재정
두 차례 쓴잔을 들이킨 KMI는 제4이통사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2011년 8월 세 번째로 재도전에 나섰다. 방석현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이 새로운 대표로 합류하고, 초기 자본금도 6300억원으로 늘렸다. 컨소시엄에는 삼성전자와 동부CNI 등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벤처·중소기업들이 고루 참여했다. KMI는 기존 통신사 대비 요금을 30% 낮출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런 가운데 그해 7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제4이통 사업 추진을 선언하며 처음으로 경쟁이 붙었다. 이후 중기중앙회를 최대주주로 하는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컨소시엄이 꾸려졌다. IST는 중소기업 중심의 제4이통사를 내세웠는데, 실제 중기중앙회와 1800여개 중소기업들이 만든 특수목적법인인 'SB모바일'이 컨소시엄의 주축이 됐다. 이와 함께 현대그룹이 컨소시엄 투자를 결정했으며 중동계 투자기관도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초기 자본금은 7038억원으로, KMI와 마찬가지로 와이브로 기반 통신 서비스와 30% 저렴한 가격을 특장점으로 내세웠다.
양사는 그해 11월 방통위에 주파수할당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접수 이후 IST 진영에서 현대그룹이 돌연 투자계획을 전면 철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갑작스레 먹구름이 끼었다. KMI 역시 심사 통과에 회의적인 전망이 많았다. 결국 예상대로 세 번째 심사에서도 제4이통사의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다. KMI는 과거 심사 탈락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던 부분들이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았고, IST는 현대그룹의 이탈로 인한 재정적 능력 불확실성이 탈락에 영향을 미쳤다.
양사는 이듬해 하반기 나란히 제4이통사 허가 재신청에 나섰다. 그러나 2013년 2월 방통위가 내린 결과는 역시 '부적격'이었다. 마찬가지로 재정적 능력과 향후 사업계획에 대한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았다. 이 역시 어느 정도 예견됐는데, 2012년 6월 '기간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 및 심사기준'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허가신청법인이 재정적 능력 관련 자료를 미제출하거나 자본잠식 상태인 경우 기준점수를 하향 조정하고, 최소 초기 납입자본금 규모에 차등을 둬 자금조달능력 평가를 강화하고 통신 사업의 안정적 수행을 담보하도록 한 것이 골자였다. 당시에도 고시 개정으로 인해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정부 강한 의지에도…'7전7패'
와이브로가 점차 사양길에 접어듦에 따라 정부는 2013년 9월 와이브로 용도였던 2.5㎓ 대역 주파수를 '시분할방식 롱텀에볼루션(LTE-TDD)' 용도로 확대하기로 했다. 제4이통사에 도전하는 신규 사업자들에게도 LTE-TDD 기반 서비스 제공이 권장됐다. 이를 토대로 KMI가 다섯 번째 도전에 나섰고 예상대로 LTE-TDD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공종렬 KMI 대표는 2015년 7월까지 LTE-TDD 전국망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가계통신비를 최대 절반까지 감면하고, 월 기본료 3만6000원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KMI 외에도 기존에 두 차례 낙방했던 IST, 전국 소상공인이 주축이 돼 결성한 우리텔레콤, 박성도 전 현대모비스 부사장이 이끄는 퀀텀모바일, 알뜰폰 사업자인 세종텔레콤 등이 제4이통사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014년 2월 주파수할당 신청 마감일에 제때 신청을 마친 사업자는 아무도 없었다. KMI는 막판 보증보험 제출이 늦어지면서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했고, IST는 재정 문제로 제4이통사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나머지 업체들은 최종적으로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제4이통 체제가 구성되지 않자 정부는 결국 제도 변경에 나섰다. '2015년도 기간통신사업 허가 기본계획'을 통해 신규 이통사업자 진입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다. 주파수 할당 시 최저 주파수 경매 입찰가를 낮추고, 전국망 네트워크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그 즈음에는 알뜰폰(MVNO) 시장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정부는 여전히 자체 망을 기반으로 서비스하는 새로운 사업자가 필요하다고 봤다. 알뜰폰은 기존 이통 3사의 망을 위탁해 서비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5년 10월 30일 마감된 7번째 제4이통사업자 신청에는 총 세 군데가 참여했다. 기존 꾸준히 제4이통의 문을 두들겼던 KMI와 IST는 대주주 구성 난항 등의 이유로 나란히 불참했다. 세종텔레콤, 퀀텀모바일, K모바일 등 세 곳이 도전장을 던졌다. 미래부는 내심 CJ·태광 등 대기업들의 참여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번에도 중소 사업자 위주로 경쟁이 펼쳐지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발표된 결과는 "세 곳 모두 기준 미달"이었다. 7번의 거듭된 시도에도 그 누구도 제4이통사로 선정되지 못하자 관련 정책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7전 8기'마저 먹구름…포기 않는 정부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추진됐던 제4이통사 선정 작업은 정권교체 이후 한동안 잠잠했다가, 보수 진영이 정권을 되찾으면서 부활했다. 2023년 과기정통부 주도로 다시 진행된 제4이통사 추진 정책은 이번에도 '경쟁 활성화를 통한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명분으로 진행됐다.
이번에는 제4이통사 선정 가능성이 제법 있다는 기대도 작지 않았다. 2019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기간통신사업자 신고 방식이 기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면서다. 주파수 할당 신청 후 정부가 허가 심사를 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사업자들 간 주파수 경매를 통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업체가 등록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주파수 경매 전 제4이통 신청법인들을 대상으로 적격심사가 이뤄지지만 이는 경매에 참여할 자격을 갖췄는지에 대한 평가로 실제 재정적·기술적 능력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제4이통사가 통신비 인하 효과와 함께, 2022년 통신 3사가 할당받았다가 이행 계획 부진으로 반납한 5G 28㎓ 주파수를 활용한 실질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지난해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제4이통사를 발굴하려는 이유는 혁신 서비스를 하는 사업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에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실제 정부는 4000억원에 달하는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28㎓ 주파수를 신규 사업자에 독점 제공하는 등 다양한 '당근'을 내세웠다.
당시 알뜰폰 사업에 진출해 있던 국민은행·비바리퍼블리카(토스) 등 금융사와 빅테크 플랫폼 기업인 네이버·카카오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정부로서도 재무 구조가 안정적인 대기업이 참여하면 제4이통사 추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기업들은 실제 입찰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최종적으로 스테이지엑스, 세종텔레콤, 미래모바일이 주파수 경매에 나서기로 했다. 세 곳 모두 알뜰폰 사업을 통해 기존에도 통신 관련 사업을 해 온 업체들이다.
최종적으로 스테이지엑스가 제4이통사 후보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경매가 과열되며 최종 낙찰액이 최저경매가의 약 6배에 달하는 4301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때부터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셌다. 스테이지엑스가 6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5G 28㎓ 서비스 구축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통신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스테이지엑스는 6000억원은 물론 초기 본인들이 자본금으로 발표한 2050억원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제4이통사 선정 취소 예정 통보를 받았다. 최종 결정은 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청문 절차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또 한번의 제4이통사 좌초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거듭된 불발 속 제4이통사 정책 자체에 대한 실효성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알뜰폰 가입자 수가 어느덧 1000만명을 눈앞에 뒀고, 통신사들도 최근 월 2만~3만원대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가계통신비 인하 기조에 어느 정도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양새다. 더욱이 국내 통신 시장 자체도 신규 가입자 수 증가세가 확연히 둔화되는 등 정체 단계에 접어들면서, 제4이통사가 어렵게 출범한다 해도 실제 정부가 의도한 효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상당하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종합연구반을 꾸려 신규 통신사 진입 관련 제도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기간통신사업자 진출이 등록제로 변경되면서 여러 세부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고, 이번 취소 사태로 그러한 부분이 부각된 만큼 전반적으로 제도를 검증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여전히 제4이통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관련 정책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다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5G 28㎓ 주파수 재경매 시기를 밝히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 겸임교수는 "앞으로도 정부가 제4이통사 신규 진출 사업을 추진할 생각이라면, 면밀한 통신시장 진단을 통해 그 필요성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며 "아울러 건실한 재정능력을 갖춘 사업자가 선정돼 시장 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주파수 할당 고시, 전기통신사업법·전파법 개정 등으로 미흡한 법·제도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