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균형발전 위해 선택과 집중 필요"…한은, 혁신도시 비판

2024-06-19 14:00
이창용 총재 "많은 나무 키우면 대부분 열매 부실"
한은 조사국 '거점도시 중심 균형발전' 보고서 발표
"혁신도시 10곳 효과 떨어져…대도시 집중투자 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9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시그니엘호텔에서 열린 '2024년 BOK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참여정부 때부터 20년간 추진된 혁신도시 정책이 오히려 지역거점 형성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생산·고용 창출 효과가 더 큰 비수도권 대도시(부산·대구·광주·대전)를 집중적으로 키워야 하는데 150개 이상의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이 열 군데의 혁신도시로 흩어져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와 동남권 의 발전방안'이라는 주제로 부산에서 열린 한은 지역경제 심포지엄에서 "우리 경제가 인구 감소라는 피할 수 없는 경로에 들어선 지금 투자의 효과를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이 과거보다 더 중요해졌으며 효율적인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긴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우리에게 낮게 매달린 과일은 더 이상 없으며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려면 고통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한 자신의 발언을 다시 언급하며 "너무 많은 나무를 키우려 하면 자원과 노력이 분산되면서 결국 대부분의 열매가 부실해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보다는 좋은 열매를 맺을 만한 몇 그루의 든든한 나무를 함께 키워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제구실을 못하는 지방 군소도시보다 '똘똘한 대도시'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공기관 이전 유치한 지방 군소도시의 강한 반발을 우려하면서도 한은 총재로서 강력한 '구조 개혁'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수도·충청권-비수도권 격차 심화···인구 4.7%·생산성 1.5%↓
[표=한국은행]
같은 날 한은 조사국 지역경제부에서 발표한 '지역경제 성장요인 분석과 거점도시 중심 균형발전' 보고서는 이 총재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국경제는 수도·충청권과 비수도권의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려면 거점도시 위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최근 수도‧충청권에 비해 동남‧호남‧대경권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1990~2010년 중 동남·호남·대경권 연평균 성장률(5.8%)은 수도‧충청권(6.4%) 대비 90%였지만 2011~2022년중에는 40% 수준에 그쳤다. 수도권이 전국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52.5%에 달하며 충청권을 합하면 3분의 2 수준이다. 

지역 간 생산성 격차(연평균 1.0%포인트)가 향후 5년간 지속될 경우 수도·충청권 이외 지역의 인구는 4.7% 줄어들고 생산(GRDP)은 1.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정민수 한은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은 "과도한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생산성 격차는 확장된 수도권과 나머지 지역 간의 양극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로도 저출생 등 부정적 외부효과가 확대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인구 유입 없고 고용 창출 부진한 혁신도시···균형 발전하려면?
[표=한국은행]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수도권에서 집적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도시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인구이동과 지역간 산업·무역 연계를 고려한 시나리오(일반균형모형) 분석 결과 지역 거점도시 집중 투자로 생산성을 제고하면 주변지역으로 효과가 파급되면서(전국 GDP +1.3%) 수도권 위주의 생산성 개선시(GDP +1.1%)보다 중소도시‧군 지역 경제도 더 나은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3년부터 진행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방균형발전 정책인 혁신도시는 10곳으로 흩어져 있어 비수도권 대도시에는 최적수준보다 오히려 과소투자 됐다고 한은은 진단했다. 비수도권 대도시 GRDP대비 투자적 지출 비율(평균1.4%)은 인구 20만 이상 중견도시(3.9%), 소도시‧군(16.0%)보다 크게 낮다. 

혁신도시의 경우 △부산 △대구 △울산 △경남 진주 △제주 △전북 전주 △전남 나주 △강원 원주 △충북 진천·음성군 △경북 김천 등 10곳으로 흩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대도시로 분류되는 곳은 부산, 대구이며 이곳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은은 1인당 GDP가 3만 달러 이상 인구밀도가 200명/㎢ 이상인 국가들(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의 비수도권 거점도시는 국토면적 10만㎢당 1~6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표=한국은행]
공공기관 이전의 경우 대도시에 소재한 혁신도시의 성과지표(계획인구 달성률, 가족동반 이주율 등)가 외곽신도시형의 혁신도시보다 높았다는 분석 결과도 내놓았다. 혁신도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과 연계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지방균형발전사업으로 공공기관 이전은 2010년 MB정부 때 본격적으로 이뤄져 2019년 이전이 완료됐는데 사실상 지방 균형 발전에 별 효과가 없었다는 의미다.

정 팀장은 "지역별 거점도시에 대규모 인프라 및 지식재산 투자 등을 통해 수도권 못지않은 광역경제권을 구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제도 개편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혁신도시와 관련해선 "이미 이 사업은 다 끝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어디에 이전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엔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을 추진한다면 거점도시로부터 거리가 먼 미개발지에 신도시를 건설해 이전하는 것보다 거점도시내 도심 또는 인접 지역에 배치해 기존 인프라 및 인적자원과 시너지를 최대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은은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