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저출산 사슬 끊기? ..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자

2024-06-19 05:00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의 인구소멸 현상이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식민지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일한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등극한 유일한 나라 등 대한민국이 써내려가던 ‘유일한 나라’ 시리즈가 합계출산율 1미만인 유일한 나라에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2명에 이어 금년에는 0.68명으로 다시 하락할 것으로 통계청은 예상하고 있다. 경제기적이 인구위기로 직결된 모양새다. 2023년까지도 200조원을 저출산예산으로 이미 15년 동안 지출했다던 정부는 2024년 들어서는 갑자기 그 규모를 380조원으로 늘렸다. 사람이 경쟁력인 대한민국에서 사람 소멸은 경쟁력 소멸이다. 인구감소는 인간이 더 이상 ‘소모품’ 취급당하기를 거부하는 현상이다. 10-39세 청년층에서 가장 큰 사망원인이 자살로서 그 비율은 4, 50%에 이르고 있다.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죽음이 누적된다면 그것은 개인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다.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이 저출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출생대책은 출생 이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들 지원 대부분 필요하지만 기존의 대책에서는 출생 이전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여러 단계의 조건충족 단계가 있음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출생의 핵심주체인 20, 30대를 출발점으로 하여 인간의 생애주기를 기준으로 인구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출생에 이르기까지는 임신이 이루어져야 하고 임신 이전에는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남녀가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을 만남준비기라고 하면 이 동안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은 경제적 자립이다. 이 준비기는 다시 경제적 자립을 준비하는 학업기(취업준비기)와 취업기(자립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취업이 되어야 경제적 자립의 최소조건이 충족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비로소 가족과 가정을 가지려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 취업은 성인이 된 청년에게 ‘인생 면허증’과도 같다. 취업에 기초한 경제적 안정은 청년에게 자신감과 도전의식을 불어넣는다. 교육과 취업에서의 과도한 경쟁을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제시되지 못하는 이유는 문제제기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은 부족한 기회의 다른 말이다. 전자는 제3자적 관점이고 후자는 당사자 관점이다. 치열한 경쟁을 완화하려면 대학생 지원자가 줄어야 하고 청년이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면에 기회를 확대하려면 대학진학의 문호가 넓어지고 장학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청년이 출생문제의 대상에서 주체로 전환하는 계기도 바로 취업에 있다. 저출생문제를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취업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넓히는 노력도 ‘사회화’되어야 할 것이다. 수출을 명분으로 방위산업, 조선업, 반도체산업 등에서 자행되고 있는 광범한 ‘일자리 수출’은 출생률 제고의 관점에서 본다면 엄격하게 통제될 필요가 있다.

둘째, 취업을 통해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을 이룩한 청년에게는 무엇보다도 자가주택 마련에 대한 지원이 모든 면에서 가장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한국 사회에서는 자가주택의 보유가 주거안정을 넘어 자산형성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직시되어야 한다.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1가구1주택원칙을 다시 활성화하여 부동산가격을 안정시켜 청년층의 주택마련 장벽을 크게 낮추어야 한다. 청년층이 피해자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전세사기사건은 피해자의 손해를 가장 먼저 보상해주는 방향으로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전세사기를 가능케 해준 임대사업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이미 2명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이 사기피해는 수백명의 청년에서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50% 이상이 2, 30대이다.

셋째, 출생준비기는 물론 출생 이후에도 ‘워라밸’이 회복되어야 한다. 출생의 선행단계인 만남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져야 하고 지속적인 만남을 위해서는 여가시간이 필요하다. 워라밸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주82시간은 출생에게는 악몽이다. 노동시간을 일단 주52시간으로 안정시킨 다음에 현 정부 임기 내 주48시간으로 단축되어야 하고 밤샘근무는 조속히 폐지되어야 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성공적으로 실험된 재택근무를 확대하고 유연근로시간제도 확대하여 ‘시간주권’을 점차적으로 노동자에게 옮겨야 한다.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시도되는 노동시간 연장과 노조 탄압은 출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청년에게 가해진 폭력이다.

넷째, 청년들에게는 ‘워라밸’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적용될 때 비로소 저출생 탈피를 위한 조건으로서 ‘워라밸’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육아와 보육이 아이의 신체만 키우는 ‘시간 채우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간혹 보도되는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유아교육을 받은 교사에 의한 지도와 교육이 사익추구의 현장이 아니라 공공성이 담보된 기관에서 국가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저비용으로 여성노동력을 시장으로 끌어낼 뿐만 아니라 저임금 노동력을 양성하려는 정부의 얄팍한 시도일 뿐이다.

다섯째, 자녀교육에 따르는 다양한 부담은 출생을 꺼리는 핵심원인 중 하나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외쳐온 ‘공교육 정상화’는 이제 ‘강화’로 정직하게 변경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종료되는 시간에 맞추어 부모가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학교교육이 종료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불가피해지는 공교육의 양적 증가는 우수한 교사의 증원과 처우개선을 통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의 강화만이 사교육 축소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여섯째, 학교와 사회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확고히 세우는 것이 폭력을 확실하게 줄이고 그것을 발판으로 저출생의 방향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학교폭력은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원인이다. ‘가해자의 장래’를 감안하여 ‘솜 방망이 처벌’을 기계적으로 선고하는 사법부도 저출생의 미필적 가해자이다. 아울러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당하는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했을 때 충분한 회복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성폭력,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직장 폭력, 직장 갑질, 군대 폭력, 음주 운전 등 한국사회에서 ‘땜질 처방’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있는 온갖 폭력을 근절할 때 수백, 수천 명의 청년을 절망에서 구하고 ‘안전해진 대한민국’에서 출생률은 높아질 것이다.

자본이 투자적격지를 가리켜 사용하는 ‘산업입지’ 개념을 원용하여 ‘출생입지’를 말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압도적인 세계 꼴찌인 셈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2위와의 격차가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출생률을 더욱 낮추기 위해 진력하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인구문제를 더 이상 ‘노동력 충원’의 관점이 아니라 모든 이의 ‘인간다운 삶’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해결책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출범을 준비 중인 ‘저출생대응기획부’가 기존대책의 취합을 넘어서 어떤 ‘출생 철학’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