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단기실적만 내세운 기업들 상장 시도 경계해야
2024-06-12 06:00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할 때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블록체인·플랫폼 경제 등- 우리는 자주 이들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세상을 변혁할 것이라는 선언과 함께 이런 기술에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는 경고를 듣는다. 윌리엄 번스타인은 저서 <부의 세계사>에서 이런 현상을 '현재 기술 진보의 독특함과 혁명성에 대한 자만심'으로 규정하며 비판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처한 시대의 기술이나 상황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과대평가하는 편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해 수능은 역대급이고, 내가 취직하는 해가 가장 취직하기 어려웠고, 올해 한국시리즈가 매해 역대급으로 치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런 편향을 감안하더라도 신기술과 혁신 산업은 지나치게 자주 세상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뒤집을 것이라 '주장'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는 저서 <이번엔 다르다>에서 '이번엔 다르다'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마다 결국 금융위기가 뒤따른다고 지적하며 1930년대 대공황, 중남미 부채위기,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2008년 금융위기 등을 예로 든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2000년 IT 버블 사례를 짚어 보겠다.
이 낙관적 전망은 1995년부터 2000년 사이에 미국 나스닥 지수가 무려 400% 상승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 기간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에 그쳐 실제 경제성장과 주식시장 사이에 큰 괴리가 있음을 드러냈다. 실적이 부족한 많은 기업들이 상장됐고 이로 인해 주가지수는 계속해서 상승하는 이상 현상을 보였다.
2001년이 되자 시장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붕괴했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대략 5조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손실을 입었으며, 이는 신경제론의 허구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로고프는 이 사태를 분석하며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막연한 낙관만으로는 안정적인 경제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기 10년간 27개 기업이 이 제도를 통해 시장에 입성했으며, 이들은 검증된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제도는 기술 중심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적 다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2015년에 이르러 제도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많은 스타트업이 구체적인 실적이나 비즈니스 계획 없이 단지 희망적 전망에 의존해 상장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주가는 공모가 이하로 떨어지며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 이런 현상은 혁신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낙관이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유발하고, 주식시장에서 과대평가를 낳는 원인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수많은 기업이 한 번도 흑자를 내보지 못한 채 또는 한두 해 아주 적은 흑자를 기록하자마자 꾸준한 실적을 낼 수 있는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채 상장을 시도한다. 이들은 장밋빛 미래로 자신들의 불완전한 검증을 포장한다. 이는 자칫 투자자 기만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이런 시도를 막기 위해 투자자들은 상장 주관사와 한국거래소 등 기관에서 심사 절차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조치는 기술 주도 성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시장의 신뢰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다. 희망은 전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실적이 없는 사업적 혁신이 과연 혁신인지 기만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