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주민등록번호, 왜 지금도 필요하단 말인가

2024-06-12 05:00
의료 연금 개혁 못지 않게 시급한 주민번호 개혁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의료 개혁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미래 중대사이기 때문일 것이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왜 그리 지루하게 진행되는지 답답하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에 그보다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지나치는 것은 없을까. 국가 미래를 위해 필요하나 방법을 몰라 손쉽게 고치지 못했던 것 말이다. 민원 서류가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민원서류공화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민원서류가 많은 까닭이다. 말썽거리인 행정망은 민원서류망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민원서류가 넘친다. 민원서류, 그 말을 풀어보면 민이 원하는 서류라는 뜻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민이 무슨 이유로 서류를 원할까. 서류제출 요구 기관 때문이다. 세무서 병무청 등 다양하다. 사실 필요하다고 하는 서류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공서에서 자체적으로 다 확보 가능한 정보들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제출절차 없이 관에서 필요로 하면 직접 만들어 쓴다. 민이 서류를 뗄 일이 생략되니 민원서류라는 용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걸 달고 살아야 하나. 일상에서 늘 쓰는 주민번호 때문이다. 본인 아닌 다른 사람이 사용해서는 안되는 개인정보법 규정으로 남이 번호를 알더라도 사용은 금지돼 있다. 여기서 남이란 관도 포함된다. 즉 관공서에서는 그 번호 하나 때문에 직접 서류를 만들어 쓸 수 없게 돼 있는 구조다. 그래서 민이 직접 떼서 관에게 제출하도록 강제한다. 제출하면 형식적으로 민이 관에게 주민번호 사용을 위임한 모양새가 되므로 그때부터는 관이 그 번호를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도 번호의 사용 권리가 어느 쪽에 있는가라는 형식 따위에 치우치다 보니 민원서류란 단어가 설 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법은 법 체계 상 매우 상위법이다. 결국 주민번호가 우리 사회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민원서류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서류를 떼 주는 곳도 없다. 그 이유는 무얼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민번호가 있더라도 일상 생활 속에서는 전혀 사용하질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운전면허증에는 운전면허 번호만 있지 주민번호는 전혀 기입돼 있지 않다. 여권에도 여권 번호만 들어간다. 은행에서도 고객 식별시 은행 고객번호를 쓰므로 주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은행만이 아니다. 다른 곳 어디에서도 주민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출시 지참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산다. 주민번호는 사실상 전시같이 국가 존폐가 엇갈리는 위기 상황에서나 사용 가능한 것이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과거 2차대전 시에 일시적으로 썼다가 폐기 처분해 버린 사례가 그렇다. 그래서 그런 번호를 군번이라고 봐야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일본이 최근 주민번호를 다시 도입하려다 언론의 반감을 사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일본경제신문 2023년 7월 28일자). 다른 나라에서는 성명과 주소를 주요 식별 방법으로 사용한다. 급하면 여권번호를 쓴다. 그건 주민번호와 달리 언제나 변경 가능한 번호다. 미국의 사회보장번호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주민번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게 같은 것 아니냐고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민번호를 합리화하기 위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이쯤이면 혹자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민원서류를 점진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주민번호를 일상에서 밥먹듯 쓰는 한, 여기저기 상위법에 치여 그게 쉽게 추진될 리 없다. 점진적일 필요도 없다. 현행 민원서류 전체를 선진국처럼 일거에 없애려고 한다면 주민번호를 안 쓰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렇게 한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다.

평소 무심코 지나가서 그렇지 주민번호가 일으키는 풍파는 복합적이며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대표적 폐단 중 하나가 인증의 범람이다. 선진국에서는 인증이 있다 해도 전화 문자 인증 고작 1회면 충분하다. 그래서 쉽다. 그 이유도 일상에서 주민번호를 안 쓰는 까닭이다. 반면 우리는 여러 번 반복되는 이런저런 인증 요구로 피곤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주민번호 때문이다. 반복되는 인증은 고도의 짜증을 유발하지만 해악은 없다. 그러나 주민번호가 해커들을 살려 먹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가정해보라. 그것은 국가 사회적으로 큰 해악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주민번호의 큰 해킹 덫이다. 온갖 해킹의 표적물이 되어 온 주민번호는 본래 도입 취지를 벗어나 이미 해커들과 자유자재로 공유하는 공공재로 변모해 버렸다. 56년 전 북한 무장병력 청와대 기습 사건으로 즉각 도입된 주민번호가 국민 편안보다는 오히려 적국을 먹여 살리는 도구로 변했으니 이 무슨 이율배반인가. 오프라인 시대에는 그 번호의 심각성을 모르고들 지냈지만 이제 온라인 시대에 들어와서 족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주민번호는 해커들이 특히 서버관리자를 낚을 때 큰 물건 구실을 한다. 만능 키인 까닭이다. 사이버 공간 상에서 개인 동태 파악에 단초를 제공하는 그 번호를 사용하여 동선 재구성 퍼즐을 맞춰 특정인의 취향을 채집하는 것이 해커의 수법이다. 따라서 해커에게는 그 번호는 절대 반지다. 서버관리자를 주요 표적으로 삼는 이유는 한번 걸리면 조직 내 구성원들 전부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살 피싱이라고 부른다. 주민번호가 불러일으키는 국가적 재난이다.

실례로 한국수력원자력이 해킹 당한 적이 있다(조선일보 2014년 12월 24일자). 원전이 중국 경유 북한 해커에 의해 해킹 당한 사건이다. 그 다음 날 작살 피싱의 결정판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내일신문 2014년 12월 25일자). 작살 피싱의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1년 전 청와대를 비롯하여 대형 은행 3곳과 국영 방송 등 주요 방송사 4곳이 한꺼번에 국가 초대형 재난급으로 해킹 당한 적이 있다. 당시 YTN이 긴급 생방송으로 2시간 다뤘다.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도 더해졌다(뉴욕타임스 2013년 3월 20일자). 설상가상으로 불과 3년 뒤 사상 최대 규모 해킹으로 1억건의 개인정보가 털렸다. 국민 개개인 당 수회씩 해킹 당했다는 뜻이다. 그때 대통령 주민번호도 해킹되어 대통령 자신이 국무회의에서 주민번호 폐지를 포함하여 식별 제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주민번호 주무부처는 옛날엔 총무처였지만 지금은 행안부다). 주민번호의 폐단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총리실과 행안부에서는 산불 잘 구경했다는 듯 아무 일 없이 그냥 넘어갔다. 이를 놓고 언론이 “대통령 지시도 안먹혔던 주민번호 개편”이라는 표제로 다뤘다(CBS 라디오 시사자키 2015년 3월 14일자). 그 이후로 해킹 공화국이란 수식어가 우리나라를 묘사하는 부끄러운 단어로 등장했다. 해커들은 주로 적국에서 활동한다. 적국에서 우리나라 공공기관과 국민들을 해킹해서 매년 수조원의 돈을 손쉽게 조달한다는 이야기도 밝혀졌다. 해커에 얼마나 적나라하게 노출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제도를 바꿔 주민번호가 만능 키 구실 못하게 만드는 순간 해커들은 설 땅이 없다. 한국에 대한 집요한 공작도 포기할 것이다.

총선이 끝나고 생각해본다. 뇌물공방 사망사건 소통부재 의대증원 갈등이 부각돼 치러진 선거다. 이들도 중요한 사안이지만 국가 대계를 위해 여야 공히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민원서류가 없어진다고 한번 가정해보라. 서류 떼느라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 국민이 여기저기 분주히 애쓰며 돌아다니는 노력을 생각해보라. 그게 과연 국가를 위해 생산적인 일인가. 만일 그런 에너지를 생산성 높이는 다른 곳에다 쓴다면 국가적으로 얼마나 이득이 크겠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주민번호와 인증, 그리고 해킹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 즉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는 악성 3위 일체다. 민원서류공화국 인증공화국이라는 오명과 해킹공화국이라는 치욕을 어떻게 씻을 것인지 국가는 근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에도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이 북한에 의해 6년 이상에 걸쳐 지속적으로 해킹 당한 것이 드러났을 정도로 심각하다(아주경제 2024년 5월 11일자).

모바일 건강보험증이 본인확인용으로는 사용되기 힘들 것이라는 기가 막힌 분석이 나왔다(SBS 2024년 5월 18일자). 취재 기자 분석에 의해 보험증 도용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다음이다. 그 저변에도 다름아닌 주민번호가 작용하고 있다. 병원 갈 때 모바일 앱 대신 주민증을 필히 지참하라는 정부측 홍보는 이래서 나온 것이다. 정부가 모바일 보험증 도용 문제를 없애겠다고 했으나 그 해법을 보면 또 주민번호가 사용된다. 휴대전화 본인 인증절차를 또 한번 추가하겠다고 한다. 주민번호 써서 말이다. 단연 인증공화국이다. 모순이 또 다른 모순을 연쇄적으로 낳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걸 가리키는 것이다. 모두 불감증에 걸린 탓일까. 눈을 바다 건너로 돌려보라. 다른 나라에선 주민번호 사용 않는 다른 현명한 방법으로서 어디에 사는 누구라고 하면, 즉 주소증명만 제출하면 병원 가서도 다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면 영국은 주소증명 하나로 전국 어느 병원이든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권번호 같은 개인식별번호를 제시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이 다 통한다. 인간을 물건이나 짐승처럼 번호로써 식별하는 방법이 우선시돼서는 안된다는 철학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올바르게 대비하려면 다른 사안도 중요하겠지만 민원서류부터 없애는 방향으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이런 기조는 의료 연금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전 세계에 유일한 국가 3대 오명도 매듭 풀리듯 순차적으로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