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전세사기 피해자법, 협치의 모범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4-06-05 06:00
지난 5월 또 한 분의 전세사기 피해자께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언론에 따르면 고인이 제기한 전세사기피해자결정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 전세사기 피해자로 결정된 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고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을 총괄하는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이 겪는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여야 합의를 통해 제정한 법이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법)'이다. 전세사기피해자법을 통해 그간 1만8000여 건의 피해자를 결정했고, 다양한 대책을 통해 약 4400억원에 달하는 지원을 시행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들을 위한 구제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아직도 이른바 '선(先) 구제, 후(後) 회수'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전세사기피해자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야당 안과 정부 안 중에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임차보증금 채권을 공공이 매입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자는 논의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제도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에게 즉시 지원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대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대안은 피해자 주거 안정에 방점을 뒀다. 공공기관이 피해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제공하되 경매의 배당액뿐만 아니라 경매 차익을 활용해 피해자의 피해 보증금을 회복해 주는 한편 피해자가 10년간 추가 임대료 없이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기존 매입임대 제도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제도 운영을 위해 필요한 조직, 인력, 예산도 이미 확보돼 있다. 법 통과 이후 약간의 준비 기간만 거치면 단기간에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신탁사기나 다가구주택 피해와 같이 기존에 지원받지 못하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채권을 매입하는 소모적 지원인 반면 대안은 주거 안정 지원을 위해 공공임대 물량을 확대하는 생산적 지원이다. 주택도시기금에 가해지는 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고, 주거복지 증진이라는 기금의 본래 목적에 더욱 부합하는 용도로 재원을 사용한다는 장점도 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의 소지가 많은 방안을 고수하기보다는 실행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바탕으로 여야가 지혜를 모아 합의안을 도출해 전세사기피해자법이 협치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