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정충기 대한토목학회장 "기후위기로 노후 인프라 대비 시급···토목 위상 제고하겠다"

2024-05-30 06:00

정충기 대한토목학회 회장은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올해 노후 인프라 관리와 토목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근 기후변화나 자연재해로 우리가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극단적인 기후 상황이 발생해 국내 인프라에 다양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지자체가 알아서 각각 인프라를 관리해 왔던 체계에서 탈피해 전문적인 컨트롤타워가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올해 1월 취임한 정충기 대한토목학회장(제56대·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은 올해 역점 사업으로 노후 인프라 관리 문제를 꼽았다. 2030년이 되면 교량·상하수도·댐·항만 등 국내 인프라 시설 중 절반 가까이가 준공된 지 30년 넘는 노후 시설물이 된다.
 
◆국내 인프라 절반 노후화···"대통령실 직속 컨트롤타워 마련해야"
 
인프라 시설 노후화는 단순한 서비스의 질적 하락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 자체를 위협한다. 지난해 인프라 노후화 영향으로 발생한 정자교 붕괴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노후 인프라에 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유지·관리가 갈수록 절실한 상황이다.
 
인프라가 노후화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위협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학회에 따르면 올해 기존 대비 기온 상승 폭 1.5도를 돌파한 날이 증가함에 따라 극단적인 이상기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저지대 해안 지역 침수,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등 국민 삶을 위협하고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현재 낡아가는 인프라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우외환으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을 받고 관리 부담과 비효율성도 늘어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에 지속 가능한 국가 인프라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국내 학계와 산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목학회도 대통령실 산하에 '국가인프라정책위원회(가칭)'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역시 국가 인프라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위해 '미래 국회 인프라 혁신포럼(가칭)'을 정식 단체로 출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또는 대통령실 등 정부 위주로 국가 인프라를 다루다 보면 가끔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하고, 해당 시기에 정부 성향과 의도에 맞춰서 인프라 정책이 집행되는 사례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인프라 정책이 집행되기가 어렵고 자칫하면 잘못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인프라정책위원회와 같이 민간 전문가들이 포함된다면 좀 더 합리적으로 인프라 정책을 논의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디지털·바이오 등 미래 산업 육성 위해서도 인프라 혁신 필요
 
정 회장은 국가인프라정책위원회가 미래 인프라 혁신을 위한 컨트롤타워도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디지털과 바이오 등 새로운 미래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래 산업을 제때 육성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특성에 맞는 인프라를 공급해 줄 필요가 있고 토목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진단이다.
 
"국가가 미래 산업으로 가는 데 있어서 인프라를 대폭적으로 개선할 필요성도 느낍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반도체 벨트를 만들고 있는데, 반도체에 가장 중요한 자원이 전기와 물입니다. 그렇다면 전기와 물을 어디서 어떻게 효율적·체계적으로 공급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정부가 앞장서서 세워야 하는 거죠."
 
정 회장은 토목 분야도 미래 산업을 위해 융·복합적으로 변신을 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디지털 정보 혁신과 바이오 생체 공학이 여러 학문·산업과 접목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토목과 인프라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예측이다.
 
탄소중립이나 제로 에너지 등 환경문제도 토목 산업이 지속적으로 다른 산업과 융·복합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 있다고 봤다. 토목 분야에만 국한되기보다 다른 산업 분야와 환경적인 시각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학회는 정 회장 임기 시작과 동시에 그동안 진행해왔던 회원 대상 강연 프로그램인 'KSCE 이슈 톡 콘서트'에 큰 변화를 줬다. 지난해까지는 중대재해 처벌 대응 방안, 수해 대책, 해상풍력 지지구조 등 순수 토목 관련 쟁점을 다뤘으나 올해 1월부터 챗GPT와 AI, 탄소중립 등 사회 전반적인 다양한 이슈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달에는 탄소중립이었고, 다음 달에는 에너지 관련 콘서트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탄소중립이나 에너지 등은 토목에도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라서 이런 주제에 대한 시각을 공유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를 모시고 의견을 듣고 저희와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려고 합니다."
 
정충기 대한토목학회 회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인류 문명과 함께한 토목 위상 제고 힘쓸 것"
 
정 회장은 국내 인프라 노후화 대비와 함께 올해 가장 중요한 핵심 사업으로 토목 분야 위상 제고를 꼽았다. 올해 학회가 내건 슬로건인 '인류 문명과 함께, 우리가 토목이다(In harmony with human civilization, we are civil engineers)'에도 정 회장의 의지가 묻어난다.
 
정 회장은 최근 토목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토목이 저평가받고 있다는 시각이다. 최근 유수 대학들이 학과명에서 '토목'을 떼어내는 흐름도 이러한 영향으로 봤다.
 
그러나 토목과 인프라는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와 함께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해야 할 동반자라고 정 회장은 말한다. 최근 현대인들이 토목과 인프라가 우리 삶에 가까이 있고 익숙해진 나머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1970~1980년대 경제성장기에는 토목 산업이 상당히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는 산업이었는데 현재 그 위치가 굉장히 저하됐습니다. 이는 우리 토목 분야 자체에 여러 문제도 있었겠지만 국민들이 생각하는 데 조금 잘못된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회장을 맡게 됐으니 토목, 그리고 토목인의 위상을 제고해 정상 궤도로 올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토목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국가 인프라를 다루는 산업이라는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는 국민 삶에 깊숙이 연계된 인프라 시설을 '대한민국 토목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자랑스러운 토목 산업의 결과물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방침이다.
 
학회는 지난해 처음으로 '고속국도 제1호 경부선(경부고속도로)'과 '소양강 다목적댐'을 대한민국 토목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416㎞는 우리나라 근대화를 상징하는 주요 사회기반시설로 근대 토목기술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기술적 가치를 지닌다. 소양강댐 역시 국내 토목공학 발전에 이바지한 영향력과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50년간 안정적인 댐 운영·관리를 이뤄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올해는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에 영향을 미친 '인천항 갑문'과 '서울시 지하철 1호선'을 토목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인천항 갑문은 10m에 이르는 인천 앞바다 조수 간만 차에 상관없이 선박이 항상 접안할 수 있는 부두 시설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최초 갑문이 축조됐지만 이번에 선정된 갑문은 1974년 준공된 시설이다. 이 구조물은 5만t급 대형 선박도 통행할 수 있다. 

인천 앞바다는 조수 간만 차가 최대 10m에 달해 일반 항만 건설공법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에 조수 간만 차이와 무관하게 수심이 안정되도록 24시간 작업이 가능한 갑문식 선거(船渠) 건설이 필요했고, 당시 기준으로 총 공사비 217억원을 투입해 인천 내항 전체를 선거화한 결과 동양 최대 갑문시설이 완공된 것이다.
 
청량리역에서 서울역을 잇는 연장(길이) 9.8㎞인 서울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 개통됐다. 개통 이후 지난달까지 1호선 누적 수송 인원은 약 97억7756만명으로 올해 안에 누적 수송 100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1호선은 명실상부 서울시민의 발로서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 발전과 성장의 발판이 됐다. 서울 주도심에 대규모 교통 수송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포화 상태였던 사대문 안 인구가 분산됐으며 도시 기능도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가면서 서울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인프라에 토목인의 노력이 깃들어 있는 산물인데도 국민들이 그것을 충분히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느껴져서 가끔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국민들도 인천공항 또는 대형 구조물 등을 보게 되면 토목하는 사람들이 만들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라도 해 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정충기 대한토목학회 회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