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정부 불신만 키운 '해외 직구 규제'…문제는 우리 내부에

2024-05-28 06:00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 (국제통상학)]

해외직구에 대한 국가인증(KC)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번에 불거진 정책 혼선으로 정부 불신이 가중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의 부작용을 세심히 따져보지 않았다든지,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든지 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므로 하루빨리 고쳐야 할 일이다. 정부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재빨리 정책을 철회한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눈앞에 닥친 과제는 급증하고 있는 해외직구에 대한 대처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우리 물건과 유통부문의 경쟁력은 괜찮은지,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확보를 위한 대책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외양간을 고쳐야만 두 번째 소를 잃지 않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60조원 규모고 이 중 해외직구는 1조6000억원으로 2.7%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해외직구 금액은 9.4% 증가하였지만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 증가율 10.4%에 비해서 다소 낮은 수준이다. 해외직구 비중이나 상대적 증가율도 높지 않은데 정부가 해외직구 대책을 발표한 것은 바로 중국 때문이다. 1분기 중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직구는 감소하였지만 중국의 직구는 53.9% 증가하였고 그 결과 중국이 압도적 1위의 직구대상국(56%)으로 부상하였다. 해외직구는 생활품목에 집중된다. 직구 비중이 가장 큰 의류패션 및 생활자동차용품 등은 해당 품목 온라인 쇼핑거래액의 9%를 차지하고 있다. 알리 900만(2위), 테무 800만(3위) 등 중국 온라인 판매업체의 국내 이용자들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직구가 증가하면서 품질과 안전과 관련한 소비자 불만이 증가하였다. 소비자 불만 해소와 한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 해소라는 일거양득의 정책으로 판단했을까. 우리 정부는 국가인증(KC)을 받지 않은 제품에 대한 직구 금지를 발표하였다가 소비자들이 반발하자 한발 물러섰다. 해외직구 제품의 유해성 문제에 불만을 가진 일부 소비자들을 위한 정책이 전체 해외직구 이용자들의 반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태가 주는 시사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휴대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국민들의 정책에 대한 반응이 빠르고 강해졌다. 2010년에 터진 아랍의 봄(Arab spring)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스마트폰이 톡톡한 메신저 및 응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행동하는 주체로 변하고 있다.
 
둘째,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음을 직시하여야 한다. 당장 특정국 물건의 품질에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품질 개선은 시간문제다. 물론 국산이건 수입이건 유해성 여부를 감시하는 역할은 정부가 수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있다고 도둑이 없지 않듯이 정부 역할은 사후적이다. 샘플검사를 해도 하루에 40만건 넘는 통관 물량은 너무 많다. 대기업 중심의 국내 독과점 품목 등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품목들을 중심으로 직구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시장에서 구매한 제품들도 메이드 인 차이나 등이 많은 상황에서 손쉽고 값싸게 직구할 수 있으니 소비자들이 몰리는 것이다.
 
셋째, 우리 업체들도 국내 시장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오래된 일이지만 국산 자동차를 해외에서 구입해서 타다가 귀국길에 가지고 온 지인이 있었다. AS차 들른 수리점에서는 이 자동차를 어디서 구입했냐고 물으면서 강판이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수리점 말이 옳다면 수출용 자동차가 국내용보다 더 품질이 좋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수입국의 품질 기준이 우리보다 높아서 수출하기 위해서 맞췄을 것으로 이해는 된다. 그러나 덤핑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수출용과 국내용 가격을 맞췄다면 수출용은 사실상 덤핑(de facto)이 되고 뒤집으면 우리 국민들은 바가지를 쓴 셈이다. 어디 자동차뿐이었을까. 수리점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거나 또 그건 과거의 일이니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통관, 각종 검사 등 절차가 까다로워 자동차 등의 병행수입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생활품목 등의 직구는 경우가 다르다. 개인통관고유부호만 발급받으면 누구라도 쉽게 해외직구를 통해 문 앞까지 배송을 받을 수 있다.
 
넷째, 직구 제품에 대한 소비자 평판이 형성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온라인을 통해 구입한 국산품에 대한 불만도 있듯이 해외 직구 제품에 대한 불만도 있을 수밖에 없다. 대수의 법칙으로 직구 제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이제 직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물론 우리 업체, 소비자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정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입품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직구정책의 문제는 정부가 국민보건 등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안전성 검사 결과 불량 또는 유해 물품으로 확인된 경우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는 조문(관세법 237조)을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통관보류는 적발된 물품에 대해서 하는 조치이지 하루 통관물량 46만건에 대해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인증(KC)은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등 3개 공공기관에서 주로 담당하고 있어 검사 인력 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검사 역량의 확충은 물론 외국과의 상호인증(MR)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늘사건, 사드 보복 등에서 보듯이 중국은 한국에 대한 압박 강도가 높은 나라다. 통상적인 덤핑 판정이나 높은 반덤핑 관세 부과도 말만큼 쉽지 않다. 최근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자국산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 똑같은 세율로 보복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하는 중국판 슈퍼 301조(중국 관세법 제17조 개정, 금년 12월 발효)를 입법하였다. 유감스럽지만 중국과의 통상마찰은 우리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우리 업체들도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존중하고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보답하는 한편 유통마진 축소 등을 위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앞마당 무역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소비자단체들도 나서야 한다. 소비자 운동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 대한 캠페인을 넘어 수입품에 대한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수입품의 품질이 향상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규제를 획기적으로 혁파하여야 한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지원에는 규제가 따른다. 정부와 국회는 새로운 지원 법령을 만들기보다는 현재 있는 각종 규제법을 개정하여 규제를 없애야 한다.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금지 등을 규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6% 선이고 2022년 5월 이후 정부 입법 통과율은 40%에 그친다는 분석이 있다. 제안된 법률안이 대부분 규제법이기 때문에 규제를 하지 않기 위해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남 탓하기보다 내 탓을 하여야 할 때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