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우리 경제의 세가지 의문부호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2024-04-26 08:00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명예교수)]


총선이 끝났지만 우리 경제에 대한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 당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선거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경제에 던져진 여러 의문부호들에 대해서는 답을 해야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총선에서 나온 경제 문제는 크게 3가지로 추릴 수 있다. 우선 현실적인 문제, 즉 대파 가격으로 정점을 찍은 물가 상승과 금리 운용 및 가계 부채, 다음으로 미래 문제, 즉 잠재성장률 하락과 경제성장률 둔화, 마지막으로 수출 등 국제 경쟁력 문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 국민들은 일자리(근로)를 통한 소득의 안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올해 3월 글로벌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입소스(Ipsos)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가장 큰 걱정으로 실업(41%)과 인플레이션(37%)을 꼽고 있으며, 부패(31%)와 빈곤 및 사회적 불평등(30%)을 후순위로 보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29개국 응답자들이 실업(27%)을 인플레이션(35%), 빈곤 및 사회적 불평등(30%), 범죄와 폭력(30%) 다음으로 꼽은 것과 비교된다. 사회보장 차이 때문일까.
 
생활과 직결되는 인플레이션은 세계 공통의 걱정거리이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은 2022년 초 0.25%였던 기준금리를 11차례 인상하여 현재 5.5%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 중앙은행도 2022년 7월 0%였던 기준금리를 10차례 인상하여 현재 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2년 1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미국 통화량(M2)은 4.2% 감소하였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금리를 올리고 통화량도 줄여 물가를 잡고 있지만 한국은 그럴 만한 형편이 안 된다. 금통위(한국은행)는 기준금리를 2022년 2월에 1.25%로 인상한 후 현재 3.5%를 유지하고 있으며 통화량 공급(M2, 평균잔액)은 오히려 3644조원(2022년 1월)에서 3937조원(2024년 2월)으로 8% 늘렸다.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통화 공급도 늘리고 있으니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 안정은 한국은행의 중요 책무이지만 2019년 이후 설정한 2% 수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21년 중반 이후부터 지키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가 제기될 법하지만 경제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비난하기 어렵다.
 
둘째, 잠재성장률 저하와 경제성장률 하락 문제다. 잠재성장률은 자본과 노동, 그리고 생산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니 자본 투입을 늘리거나 생산성을 향상시켜야만 잠재성장률을 올릴 수 있다. 가장 빠른 자본 투입은 장치산업, 대기업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장치산업 중심의 대기업을 통한 성장 잠재력 향상은 경제의 양극화 문제 등 부작용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지원하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남은 것은 생산성 문제다. 우리 경제는 전반적인 생산 과정의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들이 많다.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불필요한 규제가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 수출 등 국제 경쟁력 하락 문제다. 강대국들이 벌이는 국제 정치의 샅바 싸움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분단된 상황에서 지정학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는 수출이 세계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활로다. 그러나 제조업 수출 위주인 우리나라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이 널리 쓰이지만 제조업은 결국 사람이 움직인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세계 최고인 상황에서 한국의 제조업 분야 경쟁력 유지는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14억의 인구와 선진 설비를 갖춘 중국산의 품질 경쟁력도 높아져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과제지만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정된 자원과 제약 속에서 다 끌어안고 갈 수 없다. 최선의 방책은 가장 좋은 것부터 취하고 어쩔 수 없이 버릴 건 버려야 한다.
 
첫째,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저항을 두려워하지 말고 기득권 카르텔의 혁파 등 각 분야의 이익 공유 사슬을 해체하고 외부 개방을 통한 경쟁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출을 통한 고도 성장을 주장하던 1980년대에 경제수석이었던 김재익은 “수출보다 수입” “수입할 수 없는 것만 빼고 다 수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 경제 발전의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된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인내와 시장 개방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금리 인상과 통화량 조절이 가능한 경제 회복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울러 시장 개방을 통하여 독과점에 대한 압력을 높여야 한다. 물가안정책임관 제도는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이해는 가지만 차라리 기후변화로 인해서 사과와 대파 생산이 줄고 가격이 올라가게 되는 사정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둘째, 총량지표 중심의 경제정책을 1인 기준의 경제정책으로 보완하여야 한다. GDP가 커지면 분배도 따라서 좋아지겠지 하는 정도로는 당면한 민생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가 금년 경제성장률을 작년 1.4%에서 2.2%로 반등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경제 활성화 시책들을 제시했지만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GDP가 톱10이었다가 13위권으로 밀려났다 해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금년 수출 목표로 몇천억 달러를 내세워도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별로 없다. 내 삶이 팍팍한데 거시경제는 먼 산의 아지랑이에 불과하다.
 
양적 투입과 GDP 성장 기조로 끌어온 경제정책을 물가를 반영한 1인당 GDP(ppp) 기준으로 보완하여야 한다. 한국의 2023년 1인당 명목 기준 GDP는 3만3000달러 수준으로 대만의 3만2000달러보다 높지만 한국인 1인당 ppp기준 GDP는 5만7000달러로 대만의 7만2000달러보다 낮다. 대만의 생활물가가 낮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총량 GDP의 순위가 주는 국제정치적 의미도 있겠지만 생활수준을 반영하는 ppp 기준의 1인당 GDP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GDP와 수출 총액 증가를 위한 자원 투입에는 신중하여야 한다. 신조선 수주량이 중국을 제치고 1등이라고 하지만 조선업에 종사하는 국내 인력은 10년 전 20만명에서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 인력이 부족하니까 외국인으로 메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필요 최소한의 인력 도입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과도한 도입은 언젠가 사회적 비용과 문제를 야기하게 마련이다. 터키 인력을 도입한 독일과 동유럽 이민에 대한 서유럽의 사례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중화학 장치 산업 전부를 붙들고 갈 수 없다면 각 산업의 고기술과 고부가가치화를 지향하면서 산업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경제에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만큼 경제 정책의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