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공짜인 듯, 공짜 아닌"...미술관·박물관 입장료
2024-05-21 12:08
◆미술관, 박물관과 돈
사실 우리는 평등하다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특히 한국의 미술계는 물론 세계적으로 미술계를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가 기회균등보다는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좀 속물적이지만,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예술 중에서 미술이 가장 돈의 세계와 단단하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요 미술관 박물관의 상설전 또는 특별전을 갈 때 마음을 졸이게 되는 것은 작품과 전시에 대한 기대는 물론 새로 발견 또는 구입한 다 빈치나 피카소의 내 일상을 초월한 가격을 스스로 추정해 보는 것도 한몫한다. 특히 신문이나 TV에서 보거나 들은 가격이 “정말 그 가치가 있는 것일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전율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속물적속성 때문이지 결코 내가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미술이 문학이나 여러 형태의 음악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미술품이 완전하게 실재하려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 자체일 때 가장 완벽하게 기능한다는 점이다. 책 또는 사본(Replica)이나 복제품(Reproduction)으로 보는 미술품이나 유물은 실제 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 아니라 훨씬 축소된 경험일 뿐이다.
따라서 언제나 미술관 박물관은 원본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관리하며 조사하고 연구해 전시로 이어져야 해서 늘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미술관 박물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생존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래서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은 가상 현실, 인터넷 미술관을 개발하고, 전통적인 소장품 관리도 새로운 과학기술을 도입한다. 또한, 역사와 오늘의 문화를 포착하고 큐레이팅하는 데 전념하는 수많은 환상적인 블로그와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유지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 문화사회적기업은 새로운 고객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게다가 미술관 박물관의 소장품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를 보관할 수장고와 전시할 공간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대개의 미술관 박물관은 십수 년이 지나면 증축은 물론, 더 새롭게 개발된 완벽한 작품보존환경으로 개선하고 조성하기 위해 최소한 개보수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미술관 박물관은 문화유산을 수집 보존한다는 대의명분을 차치하고라도 많은 곳에서 ‘돈’을 필요로 한다.
미술관 박물관을 건립하고 유지보수하고 운영해 나가는 일은 국가와 사회의 몫으로 인식돼왔다. 영국의 보수당 정부가 1999년 어린이, 2000년 60대 이상, 그리고 그해 12월 모든 방문객에게 입장료를 인하하고 2001년 미술관 박물관에 부가세를 면제해 당근을 주면서 무료입장을 확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입장료가 아니야, 이 바보야
결국 연간 미술관 박물관이 납부하는 부가세만큼 실질적으로 미술관 박물관 예산을 증액해 주면서 무료입장을 이끌었고 2015년 총선에서도 무료입장을 유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잠재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공짜 입장을 시행한 2001년 국립미술관, 박물관 모두의 방문객 숫자는 평균 70%로 늘었다. 정부의 압박으로 유료에서 무료로 전환해 공짜 입장을 실시한 첫 해 V&A 방문객은 전년 110만명에서 230만명으로 111% 늘었다. 그 후 2009년 영국의 미술기금(Art Fund)는 “2001년 무료 입장이 도입된 후 이전 유료 박물관 방문 횟수가 8년 전 720만명에서 2008년 16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2010년 영국 상위 10개 중 8개의 관광명소는 무료 국립미술관 박물관이었고 2011~12 회계연도에 국립미술관 박물관 방문객은 400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계량적으로 무료입장은 관람객 방문객의 증가로 이어진 매우 성공적인 정책이었다.
하지만 특이한 현상은 방문객의 개별 신상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2009년 연구에서 미술기금은 ‘입장료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른 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 가장 높은 장벽은 전시된 미술품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미술관 건물 자체에 대한 위압감이 사람들에게 국가가 소장한 미술품을 감상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특히 증가한 방문객 중 50%는 무료이기 때문에 방문했지만, 다른 50%는 입장료 유무와 상관없이 방문했다고 답했다. 따라서 무료 정책은 이론적으로 미술관 박물관에 대해 접근성을 넓혀주었지만, 학생들의 단체관람 외에 큰 변화가 없었다. 증가한 입장객 중 15%가 영국인이었고, 교육과 경제적인 중상류층의 20% 이상의 방문과 영국 남부 주민의 21%,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가 29% 증가했다. 이는 입장료와 상관없이 올 사람은 오고, 그리고 왔던 사람은 다시 온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또 입장료가 폐지된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40%에 달하는데 이들 숫자는 국립미술관 박물관이 무료라 해도 방문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입장객이 급증한 것은 방문객의 약 40%를 차지하는 외국인의 방문이 늘었고 내국인의 경우 한 번 방문했던 이들의 재방문율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란 점이 드러났다. 이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이후 국가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 타 도시, 다른 주에서 여행 온 이들에게는 입장료를 차등을 두고 받는 정책이 시행되는 기반이 되었다. 또 독일의 사회학자 폴커 키르히베르크(Volker Kirchberg)의 연구에 의하면 결국 방문객 증가는 공짜입장료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시간 부족’과 ‘관심 부족’이란 점이 밝혀졌다.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이 민간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미국미술관의 주 수입원은 기부금(Donaition)이다. 그리고 입장료는 수입의 약 4~5%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형미술관의 경우는 다르다. 뉴욕의 수입의 10% 이상을 입장료로 충당한다. 2024년 입장료 인상으로 입장료가 수입의 16~17%에 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구겐하임이나 휘트니, MoMA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들은 입장객 감소를 걱정하지 않는다.
2015년 미국 성인 9만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방문객 서비스 조직에 대한 국가 인식, 태도 및 활용 연구’(NAAU, the National Awareness, Attitudes, and Usage Study of Visitor Serving Organizations)에 의하면 6가지 기간(1주에서 2년까지) 중 하나에 처음 미술관 박물관을 방문하려는 미국 응답자 중 $20 이상의 입장료를 내더라도 좋은 미술관 박물관을 방문할 의사가 있거나 높다고 답한 비율이 의외로 높았다. 또 사람들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실제로 ‘전문적인’ 금액을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해도 기꺼이 방문하겠다”고 답했다.
결국 미술관 박물관의 입장료는 모든 사람이 미술관 박물관의 시설 또는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타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정신을 통일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서 외우는 신비적인 위력을 가진 만트라(Mantra, 眞言)와 같은 것이다.
사실 문화예술사회적기업인 미술관 박물관의 사명이 문화를 장려하는 것이라면 입장에 금전적 장벽을 만들지 않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기관에서 필요한 비용이 국고나 지방재정 또는 보조금이나 후원으로 충당된다고 해도 보다 나은 활동과 서비스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유료 입장과 기부금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공짜 입장을 실시해 온 영국이나 기타 국가의 결론이다.
◆나 대신 누군가가 내는 입장료
사실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미술관 박물관 같은 것도 없다. 사실 무료로 입장하는 이의 입장료도 누군가의 세금으로 이미 납부한 상태이다. 생전 미술에 취미나 흥미를 느끼지 못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세금까지 포함해서 입장료가 나간 셈인 것이다. 이는 소위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을 해당 재화나 서비스의 혜택을 직접 받는 사람이 부담해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표를 의식한 정부나 정치인들은 미술관 박물관이 무료라고 외치면서 정부가 지원해야할 예산은 계속해 줄여나가 미술관 박물관에게는 배드 파더(Bad Father)로 불린다. 영국의 경우 중앙정부가 예산의 절대적인 부분을 지원한다지만 그 예산이 방문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 그마저 줄였다.
영국에서 미술관 박물관에 지출되는 공공 자금은 2017년 통계에 의하면 매년 약 2600개의 공공기관에 약 8억4400만 파운드(11억 달러, 약 1조 4982억원)의 세금을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10년 전에 비하면 연간 1억 파운드(1억3100만 달러, 약 1731억원) 이상 감소한 것이다.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약 1억1900만 파운드(1억4300만 달러)로 13% 줄어든 것이다. 또 2009년부터 2023년까지 미술관과 박물관의 지방정부의 예산은 36.7% 삭감됐다.
이로 인해 무료입장을 따라야 하는 미술관 박물관의 재정적 어려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3년 대영박물관(BM)의 30여 년 동안의 유물도난사건도 유물목록화 예산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라 한다. 사실 영국박물관 큐레이터의 평균연봉은 £3만1000(약 5343만원)에 불과하며 이는 런던의 교사 평균연봉보다 £6000(약 1034만원)이 낮다. 2020년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이 카페의 ‘커피 책임자’를 공채하면서 큐레이터 평균연봉보다 많은 액수를 제시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사실 미술관 박물관의 이런 낮은 급여는 진정으로 실력있는 큐레이터보다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배경 좋은 이들이 점유하는 ‘부티’ 나는 일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은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가 미술관 박물관의 무료관람을 시작한 것은 명절이나 기념일, 또는 다른 정책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되다 2002년부터 국민의 문화복지 향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행됐다. 이때까지는 자율적으로 선택적 무료관람을 시행하거나 입장료를 낮추었고 무료관람 대상도 연령별, 사회계층별로 선별 적용하고, 무료관람이 가능한 일시 및 기간 또한 제한적, 한시적이었다.
그러다 2008년 5월 전격적으로 기획전시를 제외한 상설전시 무료관람이 시행됐다. 그러나 입장객이 크게 늘었다는 보고는 없었고 오히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역대 최고의 관람객을 기록한 것은 2005년 용산 재개관으로 인한 개관 특수에 기인하는데, 이때 입장료를 2000원으로 상향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폭증한 바 있다. 이때도 입장료 유무가 관람객의 증감과 상관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럼에도 무료입장이라는 정부와 정치가들의 생색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병들어가고 있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에 문을 열 1986년 당시 상설전시 입장료는 110원이었고 개관기념특별전 ‘프랑스 20세기 미술전’은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이었다. 현재 입장료가 상설 전시의 경우 무료고, 기획전시는 2000원이니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통합입장권의 경우 3개의 전시를 모두 합해 5000원에 불과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도 상설전시관과 어린이박물관은 무료로 개장하고 주로 외부기획사가 대관형식으로 펼치는 특별전시의 경우 보통 1만원에서 1만7500원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정부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공짜라고 하지만 서울관과 덕수궁관의 경우 상설전시가 없는 전시관이기 때문에 결국 입장료는 2000원에서 5000원 내외인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기획전의 입장료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면 오히려 상설전시를 공짜라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기획전시 입장료가 비싸게 느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무료를 표방하는 영국도 2023년 2월과 3월 사이에 수집된 자료에 의하면 성인 일반 입장권 평균이 2016년 £6(약 1만300원)에 비해 £7.60(약 1만3000원)으로 올랐다. 또 같은 보고서에 의하면 입장료를 징수하는 기관이 2016년 42%에서 2023년 7%가 증가한 51%의 미술관 박물관이 입장료를 받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입장료를 인상 또는 부과한 미술관 박물관은 ‘부정적인 영향이 거의 없는’ 범위 내에서 입장료를 인상했으며 실제로 일부는 꽤 오랫동안 가격이 너무 낮았다는 것을 조사에서 발견했다.
노동당 정부의 무료라는 소신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미술관 박물관 이사회의 무료입장에 대한 재고를 막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껍데기뿐인 미술관 박물관을 유지하는 것 보다, 입장료를 부과하는 것이 최선인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눈 가리고, 아웅하며 ‘무료’라 주장한다. 그런데 공짜를 즐기는 이들 조차 이제 묻기 시작했다. 실제로 혜택을 받은 사람은 누구이며, 정부 예산 즉 국민의 세금이 한계에 도달한 지금 무료입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말이다. 게다가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요즘, 입장료를 낼 테니 보다 양질의 미술관 박물관의 볼거리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은 것이 요즘 문화 시민들의 요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