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돈과 비엔날레, 그 양면성
2024-04-29 12:19
◆아무도 모르는 비엔날레 예산
미술 동네가 늘 세상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과도하게 상업자본주의와 결탁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 그림이 돈을 탐한 적은 없다. 일부 자산가들의 과도한 욕심과 자기 과시욕이 그림을 통해 실현되면서 폼은 부자들이 잡고, 욕은 미술작품과 미술계가 먹는 억울한 처지일 뿐이다.
사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예산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있다. 물론 주최측은 올해 예산을 지난해와 같은 1900만 달러(약 262억원)라고 하지만 실제 비엔날레로 인해 지출되는 예산은 아무도 모른다. 2013년에는 약 1420만 달러(약 196억원)였지만 실제 주최 측은 230만 달러(약 31억원)를 내고 나머지는 개인과 재단, 자선가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각 국가관이 전시를 위해 투입하는 비용이나 시내 전역에서 열리는 30개의 부대전시(Collateral Event) 그리고 비엔날레를 계기로 베네치아 시내 일원의 궁전(Palazzo)를 임대해서 열리는 숫자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약 40여개의 전시를 감안하면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확실하게 남는 장사다.
일단 입장수입만 해도 2019년 약 59만4000명. 2022년 입장객이 80만명을 넘었다고 하니 입장료(1인당 25유로)만해도 2000만 유로(약 295억원)가 들어온 셈이다. 여기에 이를 보려고 온 외지인들이 숙박비만 계산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런데 올해는 입장료를 30유로(약 4만4000원)로 인상하고, 당일치기 방문객에게는 오버 투어리즘의 폐해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시 입장료 5유로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오버투어리즘이 걱정이라면 미술, 건축, 영화제, 무용, 음악, 연극 등 매년 또는 격년으로 여는 행사를 서너개 없애는 것이 더 설득력있고 실효적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80만명을 넘는 관람객은 비엔날레의 숨겨진 자금 조달 방식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사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메인 스폰서는 일리카페(Illycaffè)다. 또 공식 행사 파트너로 스와치(Swatch)가 있다. 여기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블룸버그 자선 활동 (Bloomberg Philantropies), 베네치아 교통카드(Vela-Venezia Unica). 클리어리 고틀립 스틴 & 해밀턴(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 LLP) 로펌이 후원한다.
◆비엔날레-바젤효과?
특히 비엔날레의 국가관, 부대 전시와 기타 전시는 각자 알아서 예산을 충당한다지만 본 전시인 국제전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Stranieri Ovunque–Foreigners Everywhere)’의 참여작가가 2022년보다 119명 늘어난 332팀 약 400명 이상이 참여하는데 예산은 예년과 같다는 것은 어딘가로부터 후원이나 협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이 전시의 지원은 디올(Dior)이 맡았다.
경매회사로는 크리스티(Christie's)가 선두다. 영국관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커미션 워크(Commission Work) ‘밤새도록 빗소리 듣기(Listening All Night To The Rain)’를 위해 작가선정과 영국관 전시와 운영을 책임지는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액수를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버버리(Burberry), 크리스티(Christie's) 그리고 아캄르프라가 소속된 리슨갤러리(Lisson Gallery)와 아트페어를 운영하는 프리즈(Frieze)의 후원을 받았다. 여기에 샤넬(Chanel)은 오프닝 파티를 열어 예술은 ‘희망의 가장 큰 형태’로, 창작의 자유를 ‘궁극의 사치’로 정의했다. 이와 함께 크리스티는 도르소두로(Dorsoduro)의 팔라조 카날(Palazzo Canal)에 설치될 장소 특정적(Site specific)인 작품만 선보이는 나이지리아관의 ‘나이지리아 상상하기(Nigeria Imaginary)’를 지원한다.
크리스티가 특정 작가와 전시, 전시기관을 후원하고 협찬하는 것은 2021년 10월 런던 크리스티에서 열린 전시회 ‘대담한 블랙 앤 브리티시(Bold Black & British)’에서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안드레아 에멜라이프(Aindrea Emelife)와 파트너십을 맺은 후부터다. 이후 올해 말에 개관하는 서아프리카미술관(MOWAA, Museum of West African Art)과의 협업으로 확대되어 베니스 비엔날레 나이지리아관 전시를 포함한 미술관의 작품수집과 지원을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전시 출품작을 크리스티를 통해 경매를 통해 판매했다, 크리스티는 2022년 처음으로 영국관을 후원했고, 당시 대표작가였던 소니아 보이스(Sonia Boyce)는 ‘그녀의 방식으로 느끼기(Feeling Her Way)’로 권위 있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렇게 크리스티는 경매회사로 발군의 역할을 하면서 잠재된 또는 새로운 작가의 발굴(?)에 진력하고 있다.
소더비(Sotheby‘s)는 독점적인 협력을 통해 미국관의 제프리 깁슨(Jeffrey Gibson)을 후원했다. 약 500만달러(약 69억원)의 지출이 예상되는 미국관에 미국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은 예상비용의 약 7.5%인 37만5000달러(약 5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작가는 물론 깁슨을 지원하는 프포틀랜드 미술관과 뉴 멕시코출신 작가를 지원하는 사이트 산타페(SITE Santa Fe) 그리고 샤론 코플랜 후로비츠(Sharon Coplan Hurowitz)와 소더비는 손잡고 깁슨이 디자인한 한정판 캐시미어 담요 시리즈를 출시했다. 소더비는 580만 달러를 목표로 한다. 60개 한정판으로 제작된 작품의 가격은 개당 7500달러(약 1000만원)로 수익금은 전시비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그래도 모자라는 예산은 포드 재단의 110만 달러, 멜론 재단의 100만 달러로 우선 전시를 꾸려왔다.
이들 경매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매시장에 나온 적 없는 작가들을 지원하면서 “우리 시대의 선도적인 예술가들을 지원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천명하지만 속내는 ‘비엔날레-바젤효과(The Biennial-Basel effect)’ 때문이다. 이는 4월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가 작품이 6월 아트 바젤에서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경우 경매 가격도 급등한다. 202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로 인해 시몬 리(Simon Leigh)의 경매가가 최고 310만 달러(약 43억원)를 경신했다.
◆환원? 또는 투자?
경매회사도 물론 미술 생태계의 일부다. 경매회사가 작가들의 창의력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주고받기’다. 따라서 경매회사의 이익을 예술계에 환원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지원을 통해 작가의 예술성보다 상업적 수준을 높이는 데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도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 지원금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생산 및 인건비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고 되려 줄어드는 형편이다. 따라서 화랑이나 경매회사, 기타 사치산업이 비엔날레 등 문화예술행사에 개입하고 투자를 촉진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회인 동시에 매우 불공평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작품을 맨손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그들의 자선(?)에 의지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국제적인 미술 행사에 자금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시장 참여자들은 더 광범위한 지원을 하려는 열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상업적 유대가 증가함에 따라 작가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화랑이나 경매회사와의 관계, 투자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작품을 제작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우려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 제작비가 계속 오르고 작가들은 보다 크고 주목받는 작품 제작을 위해 일생에 한 번 온 기회를 살리기 위해 자금을 구하려 뛰어다니고 때로는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미술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한 비엔날레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는 본질적인 질문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