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세계 벌의 날과 꿀벌 증식장

2024-05-22 07:49

김지성 농촌진흥청 기술보급과장 [사진=농촌진흥청]
5월 20일은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이다. 전 세계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2017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공식 제정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0% 이상이 꿀벌의 수분으로 열매를 맺는다. 우리나라에선 주요 작물 75종 중 사과, 딸기, 고추, 양파 등 39종, 약 52%에 달하는 농작물이 꿀벌의 수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주는 꿀벌의 화분매개가 없다면 농작물 생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FAO는 꿀벌이 없다면 100대 농산물의 생산량이 현재의 29%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은 꿀벌이 사라질 경우 식량난과 영양 부족으로 한 해 142만명 이상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월동 전후로 꿀벌이 급격히 감소하는 꿀벌 실종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 꿀벌응애로 인한 질병 감염과 꿀벌을 잡아먹는 등검은말벌의 증가, 기후변화로 인한 변덕스러운 날씨 등이 꼽히고 있다. 꿀벌의 위기는 곧 식량의 위기, 나아가 인류의 위기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꿀벌을 지키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대응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농촌진흥청에서는 첨단기술을 접목한 화분매개용 스마트벌통과 드론 활용 말벌집 퇴치기 개발, 꿀벌응애 저항성 품종 연구, 꿀벌 안정 증식 기술 보급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꿀벌 감소 대응책으로 올해 전국 5곳에 '꿀벌 자원 육성 품종 증식장'을 건립한다. 정부 주도로 꿀벌 증식장을 조성해 건강하고 꿀 수집 능력이 우수한 꿀벌 품종 보급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꿀벌 증식장은 우선 전남 영광, 경남 통영, 충남 보령의 섬 3곳에 오는 6월부터 순차적으로 완공된다. 올 연말에는 전북 군산과 전남 진도 2곳에 추가로 건립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2025년부터는 전국 5곳의 꿀벌 증식장에서 연간 총 5000마리 이상의 우수한 보급 여왕벌을 생산해 양봉 현장에 보급할 수 있을 전망이다. 꿀벌 증식장에서 생산‧보급하는 꿀벌 품종은 '젤리킹'이다. 농진청에서 2019년 육성한 서양종 꿀벌로 기존 꿀벌보다 로열젤리 생산성이 최소 11% 이상 뛰어나며 유밀기 벌꿀 생산성도 우수하다. 특히 로열젤리의 기능성과 관련된 지표물질인 하이드록시데센산(10-HDA) 함량은 기존 꿀벌보다 최소 40% 이상 높다.

그동안 여왕벌 보급은 양봉농가에서 자가 증식을 통해 생산한 여왕벌을 인근 농가에 분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이 같은 방식은 꿀벌 품종의 순도 유지가 어렵고 품질이 일정하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다.

앞으로 꿀벌 증식장이 완공되면 우수한 특성을 가진 여왕벌을 연중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양봉 현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꿀벌의 가치를 연간 300조~739조원으로 추정한다. 생태계 보전이라는 공익적 가치, 농작물 수분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 벌꿀‧로열젤리‧봉독‧프로폴리스 등을 이용한 산업적 가치 등 꿀벌이 인류에게 주는 혜택은 실로 엄청나다.

다시 찾아온 세계 벌의 날에 꿀벌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꿀벌 감소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