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65세 정년연장 목소리...韓 기업들 부담 늘어날까 '전전긍긍'

2024-05-13 00:05
거대 노조 중심으로 정년연장 요구 늘어
한국노총-야당 연합전선...법제화 가능성 커져
정년 보장된 일부만 혜택, 신중한 정책 추진 필요

[사진=아주경제DB]
거대 노조를 중심으로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중소·영세 기업을 중심으로 정년 연장을 우선 추진하는 등 고용법으로 정한 현행 60세 정년 제도를 22대 국회에서 개정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한국 기업들은 정년 연장에 따른 지출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고심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12일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단일 사업장 노조로선 최대 규모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지난 8~9일 임시 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국민연금 수급과 연계한 정년 연장을 올해 임단협 핵심 요구사항으로 정했다. 현재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나이는 63세지만 2033년부터 65세로 연장되는 만큼 정년을 최장 64세로 연장하자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기아 노조도 베테랑 제도 기간 연장을 요구하며 64세 정년 연장을 목표로 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베테랑 제도는 정년 퇴직자를 최대 1년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제도인데, 지난해 임단협에서 베테랑 근무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두 회사 노조는 정년퇴직을 앞둔 조합원 수가 많은 만큼 지난 수년간 교섭 테이블에 올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정년 연장을 올해는 꼭 관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내 50세 이상 직원은 총 3만2101명으로 전체 근로자(7만3431명) 중 44%에 달한다. 기아 내 50세 이상 직원도 1만9610명으로 전체 근로자(3만5847명) 중 55%를 차지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퇴직으로 빠져나가면 강성 노조 세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차·기아 노조는 세력 유지를 위해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에 난색을 표하는 사측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거대 노조는 이들 말고도 더 있다. HD현대그룹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HD현대삼호·HD현대미포 노조는 65세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없애라는 임단협 공동요구안을 지난달 17일 회사 측에 전달했다. LG유플러스 4개 노조 가운데 둘째로 인원이 많은 2노조도 올해 임단협에 앞서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했다. 

노사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을 원하는 거대 노조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그동안 정년 연장을 임금인상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여겼던 다른 회사 노조들도 올해부터 진지하게 관련 요구를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포스코, KT 등 근속연수가 긴 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목소리가 확산될 전망이다.

노조와 사측이 정년 연장에 합의하는 사례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동국제강그룹은 숙련노동자 은퇴에 따른 노동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 3월 임단협을 통해 정년을 62세로 연장했다. 2022년 임단협으로 정년을 61세로 연장한 뒤 2년 만에 퇴직 연령을 높였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8월 국회에 65세 정년 연장 법제화를 요구하는 청원을 냈다. 당시 민주당은 "우선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영세 기업부터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에 맞게 정년을 연장하고 대기업·공공부문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답했다. 올해 3월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정년 연장 관련 요구사항을 재차 전달했다. 

한국노총은 정년 연장 법제화를 위한 이유로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노년 부양비 증가 △법정 정년과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 차이 해소 △고령층 빈곤 해소 등을 꼽았다. 한국노총 출신인 박해철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과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도 민주당 소속으로 22대 국회에 입성한 만큼 정년 연장 법제화가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기업들은 노년층 생산성 저하와 임금 부담 증가 등을 이유로 정년 연장에 강하게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60세인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한 해 약 15조9000억원에 이르는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건비 부담으로 기업들이 청년 고용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021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선 응답 기업 중 58.2%가 정년 연장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정년 연장이 부담된다고 응답한 기업들은 연공급 임금체계로 인한 인건비 증가(50.3%)가 가장 큰 부담이라고 답했다. 이어 현 직무에서 노령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21.2%)와 조직 내 인사 적체(14.6%) 등을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도 야당이 거대 노조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정년 연장 법제화를 추진하면 공기업과 대기업 생산직 등 정년이 보장된 일부만이 혜택을 볼 것이라며 관련 정책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실제로 노조가 정년 연장을 강하게 주장하는 현대차·기아·포스코홀딩스 등은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18년 이상으로 시총 200대 기업 평균 대비 2배를 넘는 등 '평생 직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