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재정기조 갈림길] '25만원' 지원금 난색에도...巨野 추경 압박 거셀 듯

2024-05-01 05:00

지난 2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회담 TV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요구해 온 1인당 25만원 규모의 '민생 회복 지원조치(민생 지원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재정 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민주당 등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돼서다. 재정 투입을 확대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게 야권 대부분의 입장이라 '여소야대' 국면에서 현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3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내년도 예산 운용 방향과 2028년까지의 중기 재정 운용 청사진을 그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를 개최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말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해 모든 재정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재검토해 저성과 사업 예산은 줄이고 국정 과제 등 필수 소요를 제외한 재량 지출도 2년 연속 10% 이상 삭감하겠다는 건전재정 기조 고수 의사를 밝힌 바 있다. 

4·10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야당은 현 정부에 재정 정책 선회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긴축 재정에 나서면서 소비가 침체하고 덩달아 세수까지 감소하는 악순환의 덫에 빠졌다는 인식이다. 

당장 윤 대통령과 이 대표 간 영수 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한 민생 지원금 카드도 다시 꺼내 들 수 있다. 22대 국회 회기가 시작되면 지원금 지급 대상과 금액을 일부 조정하는 식으로 재추진에 나설 공산이 크다. 

정부와 여당은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살포할 경우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재정 여력이 줄어들고 아직 불안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올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2.8%에서 2∼3월 연속 3.1%를 기록했다.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로 국제 유가 변동성이 커진 데다 먹거리 가격 고공 행진도 이어지면서 4월 역시 3%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1인당 25만원 안에서 후퇴하더라도 수조원대 추경 편성이 불가피한데 이미 올해 예산의 54% 정도를 의무지출로 채운 터라 국채 발행 외에는 재원을 마련할 뾰족한 방도가 없다. 

소비 진작 효과에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가 총 14조2000억원의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정책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실제 소비로 이어진 금액은 4조원 정도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가계의 채무 상환과 저축 용도로 활용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과거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뒤 경기 부양 효과를 따져 보니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며 "오히려 국가 부채를 더 키울 수 있어 건전한 경제 정책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3%로 예상보다 높게 나온 점도 추경 편성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체감 경기와 달리 소비 지표가 견조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 경제 상황은 법정 추경 편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재정 당국의 주장이다.

국가재정법 89조를 보면 정부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거나 △경기 침체·대량 실업·남북관계 변화·경제 협력 등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추경을 편성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민생 지원금 지급 요구에 "어려운 분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기재부 관계자 역시 "대통령이 말한 그대로"라며 "현재 편성된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잘 집행하는 게 우선"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민생 지원금 추진을 위한 추경도 아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