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영의 금융문답] 원화는 왜 외풍에 유독 약할까

2024-04-24 05:00
원·달러 환율, 작년 대비 7%↑…낙폭 26국 中 7번째
무역 의존도↑ 국제 금융시장 움직임에 민감한 영향
위안화​​​​​​​·엔화 동반 하락으로 원화 과도하게 평가 절하
외국인 자금 유출입 쉬운 환경…일정부분 영향 미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올해 들어 7%가량 올랐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외환위기 전인 1997년에 비해서도 웃도는 상승 폭이다. 전 세계적인 '킹달러' 현상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원화 가치는 주요국 대비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원화 가치가 유독 크게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달러 환율, 작년 대비 7%↑…낙폭 26국 中 7번째
지난 16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한 환전소에서 원·달러 환율이 1408원에 거래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3일 원·달러 환율은 1378.3원으로 마감하며 작년 말 종가(1288원)보다 약 6.5% 상승했다. 같은 기간 6.9%, 5.8%씩 상승했던 2008년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유사한 상승폭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른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달러화의 강세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는 106선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는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어가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가 지연될 전망이 강해진 영향이다. 

미국은 최근 탄탄한 노동시장을 기반으로 소비가 개선되는 등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실업률 3.8%를 기록하며 노동시장이 개선된 데 이어 소비도 개선된 모습이다. 미국의 지난달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인 0.3%를 크게 웃돌았다. 여기에 중동 불안이 겹치며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높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주목할 점은 원화 가치가 타 통화 대비 더 크게 하락했다는 점이다. 원화 가치 낙폭은 연준이 달러지수 산출 시 활용하는 26개 교역국 중 7번째로 컸다. 한국보다 통화가치가 더 크게 하락한 나라는 △칠레(10.0%) △일본(9.8%) △스웨덴(9.0%) △스위스(8.5%) △브라질(8.1%) △아르헨티나(7.6%)에 불과했다.
 
복합 '대외 요인'에 영향받는 원화…"경제구조, 주변국 통화, 시장특성"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 엔화와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인이 원화 가치 하락을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 요인은 한국의 경제 구조가 대외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고 소규모 개방 경제다 보니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주요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 수출기업의 구조는 대외환경이 안 좋거나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게 되는 상황에 불안감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수출기업의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최근 중동 리스크 등으로 국제유가가 높아진 탓에 생산비가 오르고, 글로벌 수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인 구조들이 합쳐져 원화 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원화보다 거래량이 많은 중국, 일본 등의 주변국 통화 가치가 하락한 점이 꼽힌다. 달러 강세에 주변국인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도 함께 떨어지다 보니 원화가 우리 펀더멘탈에 비해 과도하게 절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거래량이 많은 통화에서 달러가 강한 움직임이 나오면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통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위안·달러 거래량은 원·달러 거래량의 4배, 엔·달러 거래량이 원·달러 거래량의 8배다.

외국인 자금이 한국 외환 시장에 유출입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강도가 약한 편이라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며 환율을 하락시키고,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외국인 자금이 빠지며 환율이 커지는 변동성이 생긴다"며 "이런 한국 외환시장 환경이 원화 가치 하락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현재 수준의 원화 약세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류진이 SK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 원인에는 미국 경기의 견조함도 반영돼 있다"며 "이는 수출 기반 한국 경제에는 우호적으로 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