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돈 이창용號 한은…新3고 지뢰밭 속 피벗 시점 고심
2024-04-22 05:00
이 총재의 임기 전반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며 숨 가쁘게 흘렀다. 레고랜드 사태와 새마을금고 뱅크런 등 위기에도 성공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기 후반기 최대 화두는 금리 인하를 위한 피벗(통화정책 전환)인데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아 고심이 깊다.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을 막기 위한 구조개혁 방안 마련 등 난제도 수두룩하다.
이날 임기 2주년을 맞은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총회 참석 차 방미 중이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을 넘나드는 위기 상황이지만 외신 인터뷰를 통해 적극적인 개입 의지를 피력하는 등 시장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통왕' '창드래곤'···한은사 꼬리표 떼고 소통 강화
절간처럼 조용하고 존재감이 옅어 '한은사(寺)'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중앙은행은 이 총재 취임 후 2년간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모호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이전 총재와 달리 직설적인 화법으로 시장과 적극 소통하려는 노력이 주효했다.중앙은행 수장의 거침 없는 행보에 누리꾼들도 '소통왕' '창드래곤(dragon)' 등 애칭으로 호응했다.
실질적 변화도 엿보인다. 3개월 후 금리정책 전망을 공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 도입이 대표적이다. 지난 20일 임기를 마친 서영경·조윤제 금융통화위원은 포워드 가이던스가 시장 기대심리 안정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논쟁적인 현안에도 주저 없이 목소리를 낸다. 지난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는 농산물 물가 상승을 통화·재정정책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수입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은 역시 전보다 과감한 의견 개진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달 '돌봄 서비스' 관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필요성을 담은 보고서가 상징적 사례다.
한은 직원들도 이 총재의 '이슈 메이킹'이 싫지 않은 눈치다. 한 직원은 "묻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보고서들이 이슈화되고 있다"며 "한은 콘텐츠가 '잘 팔릴 수 있게' 이끌어 준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시아개발은행(ADB)·IMF 등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며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한은 위상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계적 석학과 어깨를 견주며 토론을 하거나 주요 국제회의 등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면서다. 이번 출장에서도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과 한국 통화정책을 놓고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피벗 시점 고심 중···구조개혁 등 중장기 과제까지
취임 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물가·환율 안정을 위해 달려온 이 총재는 임기 후반기에도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당장 잔뜩 끌어올린 금리를 언제부터 내려야 할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3.5%)를 10회 연속 유지하면서 한·미 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포인트로 벌어졌다. 외화 유출 가능성을 고려하면 미국보다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금리 인하를 마냥 늦추기도 어렵다. 하반기 중 금리를 낮추기 시작하더라도 역대급 고금리가 최장 기간 지속되는 셈이어서 금융 비용에 짓눌린 가계와 기업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 후반기를 함께할 금통위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대표적 매파인 조 위원과 서 위원이 퇴임하고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종화 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이 발탁됐다.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 해법 마련도 이 총재에게 맡겨진 임무다. 그는 지난 3월 "이미 낮게 매달린 과일은 없고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춰 한은 경제연구원은 오는 5월 입시제도, 하반기엔 기후변화 관련 연구 결과를 내놓으며 새 화두를 던질 계획이다.
이 총재는 앞으로도 적극적 소통을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이르면 오는 8월부터 분기별 경제 전망치(성장률·소비자물가·경상수지·고용지표 등) 발표 시 단순 수치 제공을 넘어 향후 경기·물가 경로에 대한 혜안을 제시한다는 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