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댓글부대' 홍경, 마음을 허물다
2024-04-12 00:02
배우 홍경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어느 작품과 캐릭터를 맡든 관객들을 설득하고 이해 시킬 줄 아는 힘이다. 그는 차근차근 인물을 소개하고 가장 연약한 속내까지 꺼내어 관객의 마음을 허물어트린다. 이야기의 빈틈과 캐릭터의 결점까지도 홍경을 통하고 나면 각각의 '사정'을 가지게 된다.
영화 '댓글부대'(감독 안국진)의 '팹택'도 그러하다. 온라인 여론 조작에 빠져드는 키보드 워리어로 단순히 '악역'에 그칠 수 있었던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그려냈다. 홍경은 아주 작은 단위의 감정까지 낱낱이 훑어내어 '팹택'의 애착과 자격지심 같은 서사를 일궈냈다. 관객들이 '팹택'을 궁금해하고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건 그의 공이 컸다.
"사실 제가 맡은 역할들이 '마음을 주기 힘든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보는 이들이 마음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선역이든 안타고니스트든 간에 '어떤 마음'을 확실히 이끌어내야해요. 저는 그래서 결여된 부분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모든 인간은 결핍이 있어요. 저는 '팹택'의 결핍을 '관계성'에서 찾으려고 했어요. 인정 욕구 같은 여러 요소들이 결국 친구들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석했죠. 사실 외부로 드러나거나 캐릭터에 대해 설명되는 게 없잖아요. 제가 주어진 요소들을 힌트 삼아 고민하면서 '친구들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하구나'라고 느끼게 되었고 그것들로 (인물의 빈칸을) 채워나갔어요."
영화 말미 등장하는 '찡뻤킹'(김성철 분)과의 갈등 장면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감정선이 도드라지는 신이다. 그는 '찡뻤킹'과의 대화와 갈등에서 관계성과 서사를 유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찡뻤킹'은 무리를 떠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고, '팹택'은 지키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여론 조작의 피해자인 대학생 '은채'의 죽음 이후 '찡뻤킹'과 '팹택'의 감정은 고조되고 갈등의 골도 깊어진다. '팹택'이 당시 느꼈을 감정에 관해 묻자, 홍경은 잠시간 고민 끝에 "낭떠러지에 선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 사람의 관계 안에서 낭떠러지에 선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거로 생각해요. ('은채'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부정하지만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을 거고요.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데 친구들과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으니, 그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게 아닐지 생각했어요. 죄책감을 부정하고 숨길 뿐이지 그가 느끼는 감정들은 리얼하다고 봤어요. 어떤 걸 마주했을 때 정면으로 마주 보는 사람도 있지만 피해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팹택'은 피해버리는 사람이었던 거죠."
홍경은 팹택의 외피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거들었다. 옷차림부터 주근깨 같은 디테일에서도 캐릭터의 성격이 묻어날 거로 생각해서다다.
"치열하게 고민했고 제작진분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집안에서 생활하는 아이지만 선입견을 탈피하고자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스타일링을 해보았죠. 집에서만 지내지만, 옷에 관심이 많은 아이일 수도 있잖아요. 하하. 선베드에 누워있을 때 입은 분홍색 크롭 티셔츠도 제가 아이디어를 냈던 의상이고 (당시 착용하고 있는) 선글라스는 실제 제 아이템이에요. 어떤 새로운 결을 보여드리기 위한 디테일 중 하나였어요."
영화 '결백'부터 드라마 '약한영웅' '악귀' 등에 이르기까지. 홍경은 10대부터 20대 중후반까지 다양한 나이대를 연기해 냈다. "요즘 아이들의 면면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묻자, 그는 "나이대에 대한 건 오히려 깊이 생각지 않는다"고 답했다.
"모든 세대가 다른 시기를 지났지만, 공통으로 가지는 중심축은 있다고 보거든요? 모든 세대가 느끼는 연대 의식에 매료되어 있어요. '요즘 세대는 다르게 느낄 거야' 이런 선입견은 안 가지려고 해요. 분명 공통된 게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스크립트에 쓰여 있는 대로 그 안에서 상상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빈틈들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거죠."
홍경은 어떤 질문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되짚으며 진중히 답하는 편이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영화에 대한 강한 애정과 깊이 있는 고민이었다. 어린 시절 영화에 매료되어 지금도 앞으로도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그는 긴 대화 끝 자신이 오래도록 고민하고 곱씹어왔던 '영화의 힘'에 관해 터놓기도 했다.
"과거에는 'TV가 나오면 라디오는 다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했잖아요. 하지만 TV는 TV대로,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각각 주는 힘이 다르고 더욱 고유해졌다고 봐요. 저는 영화도 그런 거 같거든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모든 게 구체화하고 다이렉트해졌다고 보는데. 여백에서 느끼는 상상과 (한 작품을 보고) 개개인이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재미는 영화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같은 걸 공유하고 연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잖아요. 극장이 그리고 영화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홍경은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매 작품 전력투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곤 한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바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아직도 같은 고민 중이냐?"고 묻자 "매번 위기"라며 웃었다.
"매 순간이 위기인 거 같아요. 아직도 두려워요. 작품마다 '진짜'여야 하고 솔직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눈속임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없고, 그러기도 싫고요. 매 순간 마음이 닳지 않도록 전력투구해야 하는데요. 이러다 제 마음이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잖아요. 아직도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행히 아직 일하는 게 재밌고 즐거워요.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