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기완' 송중기 "7년 전엔 이해 못 했던 사랑, 이제야 알게 됐죠"
2024-03-15 00:01
배우 송중기는 이방인 '로기완'을 연기했다. 탈북 이후 중국 연길에서 숨어 지내던 '로기완'은 엄마의 사고 현장까지 외면해야 하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라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마지막 희망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홀로 벨기에를 찾는다. 유럽의 낯선 땅에서 절박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는 또 다른 이방인 '마리'와 만난다.
송중기는 '로기완'을 두고 "운명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7년 전쯤 영화 제작사 용필름은 송중기에게 '로기완' 출연을 제안했었다. "작품에 대한 정서나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출연을 고심했지만 일정이며 작품에 대한 해석이 좀처럼 맞물리지 않아 결국 캐스팅을 고사하게 된 작품이었다.
"'로기완' 출연이 어그러지고 영화 '군함도'를 찍게 됐어요. 그때까지도 '로기완'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없기에 마음속으로 '왜 제작 소식이 없지? 작품은 참 훌륭했는데' 싶더라고요. 그러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촬영 후반쯤 넷플릭스 쪽에서 연락받았어요. '로기완'을 제작할 거라고요. 갑자기 '아, 운명 같다'라는 생각을 했죠. 돌고 돌아 제게 온 거니까."
7년 전만 하더라도 '로기완'과 '마리'의 사랑에 공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기완'에게 사랑은 사치"라고 느꼈던 터였다.
"(용필름) 대표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기완'과 '마리'의 관계였어요. 공감을 못 하겠더라고요. 공감이 안 되는데 내가 잘 연기해 낼 수 있을까? 미덥지 않더라고요. 이방인이기 때문에 엄마의 죽음마저 외면해야 했던 기완이 어머니의 시체를 판 돈으로 벨기에까지 갔으면서 사랑 타령을 한다니 좀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7년 동안 저나 작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하하. 그 사랑마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그게 무엇이든 사람과 부대껴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제야 이해가 가더라고요."
영화 '로기완'은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영화(비영어) 부문 3위, 대한민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모로코, 카타르 등 12개 국가 TOP 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사랑받고 있다.
송중기의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태양의 후예' '아스달 연대기'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과 영화 '늑대소년' '승리호' '군함도'를 지나 최신작 '화란' '로기완'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르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화란' '로기완'과 같은 묵직하고 어두운 서사와 캐릭터들을 가진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여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던바.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정서'를 주목해요. 현실적으로 드라마에서 채우기 어려운 스산한 정서들이 영화에는 많으니까. 배우로서의 욕망을 영화에서 찾는 편인 것 같아요. '화란'도 그렇고 '로기완'도 그런 스산하고 불안정한 정서를 마음껏 표현해 보고 싶었고요."
배우로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영화의 장르성'을 주목하지만 주연 배우로서의 몫은 다해내려고 한다. "흥행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건 주연 배우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기도 했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스산한 정서를 가진 작품을 선호하고 배우로서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하지만요. 흥행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주연 배우가 흥행을 고려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거죠. '화란' 때 개런티를 받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예요.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고 여겼고 그러려면 배우 출연료를 줄여야겠죠? 주인공은 (홍)사빈이었지만 아무래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는 제가 고민해야 할 것들이 생겨요. 드라마, 영화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하고 작품에 해가 되는 일은 해서는 안 돼요. 저도 한 집안의 가장이지만 스태프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잖아요. 그러니 더욱 진지하게 임해야죠."
이번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남달라 보였다. 올로케이션 촬영이 주는 고단함과 캐릭터가 주는 심리적 부담도 차근차근 이겨내며 작품에 오롯이 몰두했다.
"스태프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요. 언어가 다르니까 힘든 점이 많았어요. 또 영화 현장에는 변수가 많은데 올로케이션이었으니 얼마나 더 힘들었겠어요."
캐릭터에 일체화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로기완'이 느끼는 감정들을, 시간차를 두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 그는 오랜 시간 '로기완'을 들여다본 김희진 감독의 말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드러내며 그의 뜻에 따라 '로기완'을 채워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격앙된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씨이'하는 숨소리를 냈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깜짝 놀라면서 '기완이는 그런 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격앙된 상황이 오더라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다고요. 감독님이 가진 차분하고 순수한 색깔이 기완이에게 묻어있다고 생각하고 그 순수함을 따라가려고 했어요."
송중기는 최대한 자신을 지우고 김 감독이 그린 로기완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김 감독이 송중기가 그린 기완에게 매료되어 기존에 설계한 캐릭터들을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었다.
"원작이 각색되고 시나리오화되며 촬영을 시작하기까지 11년 정도 지났어요. 초고가 나오고 2고, 3고가 나오면서 유지되었던 기완이라는 캐릭터가 저라는 배우를 만나 변화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제작사 대표님도, 감독님도 '저를 만나 기완이 온도감을 가지게 됐다. 더 뜨거워졌다'고 표현하셨어요. 최대한 저를 지웠다고 생각했는데도. 저도 그렇지만 감독님도 저를 만나고 계속해서 캐릭터가 수정되며 지금의 기완이로 완성된 게 아닐까 싶어요."
송중기는 배우 서현우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며 "특별출연임에도 진심으로 연기에 응해줘서 감정 연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영화 초중반 벨기에로 떠나기 전이에요. '삼촌'(서현우 분)과 감정적으로 붙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이 없었으면 지금의 기완이는 없었을 거예요. 처음에는 지나가는 장면처럼 가볍게 찍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을 가니 무게감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서현우 선배 덕이었죠. 촬영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한 번 더 하자'고 하시면서 '기완이가 벨기에에 가야 하는데 이 정도 에너지로 보낼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감명받았어요. 특별출연인데도 진짜 열과 성을 다해주셨어요. 그분의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 에너지가 기완이 벨기에로 떠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현장에서 처음 만났고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정말 반해버렸어요."
송중기는 극적인 감정에 다가가기 위해서 '트리거'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번 '로기완'에서는 엄마의 사고 이후 샤워하는 장면이 그의 트리거가 되어주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을 가면 자연히 찾아지긴 해요. 제가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감정을 탁 터트릴 수 있는 무언가들을 발견하곤 하죠. 이번 작품은 (샤워를 하며) 물줄기에 쓸려 내려가는 핏물이었어요. 시나리오에서는 '피를 닦는다. 운다' 정도로 정리가 되어있었는데 감독님께서 현장을 살펴보시더니 (샤워장이) 경사져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며 핏물이 하수구를 타고 쓸려내려가는 모습을 찍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는 거예요. 속으로 '와!' 감탄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뜨거운 물을 뿌리고 물이 쓸려가면서 핏물이 사라지는 장면이 정말 좋았고 저의 감정적 트리거가 되어주었어요. 감독님, 조명 감독님, 미술 감독님, 배우까지 모두 함께 작업하면서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인 것 같아요."
영화 '군함도'부터 '화란' '로기완'에 이르기까지 송중기에게는 큰 변화들이 생겼다. 그는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아버지다. 심적으로도 '변화'할 만한 지점들이었다.
"과거의 저와 지금의 제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이에 대한 마음은 그렇죠. 아마 보통의 부모님들과 똑같을 거예요. 그게 뭐 대단하거나 거창한 건 아닌데요. 나중에 아이에게 부끄러운 사람이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연기하면서 살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