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남결' 송하윤 "저의 불행을 끌어다, 정수민의 행복으로 썼죠"
2024-03-01 00:01
배우 송하윤이 데뷔 20여 년 만에 '낯선 얼굴'로 시청자들을 홀렸다. 사랑스럽고 친근한 역할들을 소화해왔던 그는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단번에 뒤집으며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송하윤을 각인시켰다.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통해서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가 10년 전으로 회귀해 인생 2회차를 경험하며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 중 송하윤은 강지원(박민영 분)의 절친이나 그의 남편 박민환(이이결 분)과 불륜을 저지르고 끝내 그를 살해하는 악녀 정수민을 연기했다. 데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맡은 악역이었다.
그동안 선한 역할을 도맡았던 송하윤의 파격적인 작품, 캐릭터 선택은 팬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말한 만큼 '수민' 역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권태'를 느끼고 있었어요. 제 얼굴, 캐릭터, 연기 패턴 같은 것에요. 그러던 중 '내 남편과 결혼해줘' 시나리오를 읽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정수민은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고요. '정수민은 송하윤이 지켜줘야겠다. 품어줘야겠다'고 생각했고 (출연을) 결심하게 됐죠."
처음으로 악역을 맡게 된 송하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수민을 고민했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였고 고독해지는 방식으로 인물에 가까워지려고 했다.
"제가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어요. 정수민으로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저를 설득했죠. 처음에는 잘 안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대본 리딩할 때까지도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죠. 수민의 고독감을 이해해 보려고 했고 실제로 인간관계도 다 정리한 채로 지냈어요. 인스타그램도 삭제했어요. (인스타그램 속) 송하윤이 살면 정수민이 못 살 거 같더라고요. 드라마 보는 분들도 방해받으실 거 같고요. 어플들을 다 지우고 연락도 끊은 채로 오로지 수민만을 보고 지냈죠."
잠시간 고민에 빠진 그는 "악역이 처음이라 방법을 몰랐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아주 잔인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했어요.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다 정수민의 행복에 썼다고 생각해요."
극한의 감정을 끌어올린 송하윤의 연기에 시청자들은 '연기 차력쇼'라며 혀를 내둘렀다. 송하윤은 카메라 앞이면 "기억을 잃기도 했다"며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해 왔다고 설명했다.
"모르겠어요. 정말 기억이 안 나요. 신기한 게 현장에 감독님도 계시고 스태프분들이 여럿 계시는데 '액션'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세상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완전히 수민이가 된 것처럼 스태프분들도 카메라도 모두 보이지 않았어요. '컷'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차리면 (연기하던) 기억이 나지 않고 탈진할 때도 많았죠."
정말이지 지독했다. 작품과 역할에 대한 송하윤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1년 동안 오롯이 정수민으로 살았던 배우인 만큼 깊고 짙은 감정을 온몸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후유증을 겪고 있어요. 아직 진행 중이에요. 1년 동안 수민이로 살면서 '힘들다' '외롭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감정을 입 밖으로 내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더라고요. 정말 악착같이 버텼고 (촬영할 때는) 정수민과 같은 마음 상태가 되었는지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어요. 아주 이성적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촬영 끝나고 조금씩 인간적인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어요. 다시 저로 돌아오는 모양이에요."
정수민은 송하윤에게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는 비극적 결말을 맺은 정수민을 언급하며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착한 역할만 해왔기 때문에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말과 함께 미련 없이 끝낼 수 있었어요. 캐릭터를 그곳에 두고 오더라도 걱정이 없었죠. 마음이 안심되는 캐릭터만 만났던 거예요. 하지만 수민이는 조금 달라요. 그 애를 거기에 두고 온 게 너무나 마음에 걸려요."
원작 캐릭터는 평면적인 '악역'이었던데 반해 송하윤이 연기한 정수민은 놀라울 정도로 풍성한 감정들을 보여주었다. 그는 "입체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며 정수민의 감정을 익히기 위한 노력을 언급했다.
"말투나 성격은 단순하게 입히되 감정은 최대한 입체적으로 느껴지게끔 노력했어요. 정신과 의사분들이나 프로파일러를 만나서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런 감정 상태나 마음 상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깊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어요."
정수민의 감정 변화는 비주얼적으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했던 드라마 초기와 달리 후기에 접어들며 어둡고 성숙해진 이미지를 드러냈던 것.
"초반에는 의상도, 메이크업도 '나이에 맞지 않게' 했어요. 철없는 느낌을 주려고요. 목소리도 명랑하게 연기했었죠. 그리고 회사 로비에서 거짓 임신을 고백하는 장면부터 두 번째 챕터라고 여기고 어두운 면모들을 꺼냈어요. 이후부터 의상도 점점 어두워지고 센 감정들을 드러내 왔죠. 드라마 말미는 메이크업도 거의 안 한 상태로 했었어요."
또래 배우들과의 호흡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한 명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잘 맞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모두 캐릭터의 인생을 살아내려고 하는 게 느껴졌어요. 배우들 모두 훌륭히 해주었고 성격들도 잘 맞았어요. 다들 엄청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라 호흡이 안 맞을 수가 없었어요. 또 워낙 센스도 넘치잖아요."
송하윤은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연기 방식에서도 큰 변화를 맞은바. "앞으로의 배우 송하윤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냐"고 질문했다.
"변화가 완벽히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수민이로 살아보니 겁이 없어졌거든요? 그리고 또 단순해졌어요. 과거에는 '생각'과 '압박'으로 연기해 냈다면 수민이를 통해 오히려 단순해짐을 느꼈어요. 이런 변화들이 앞으로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저 역시도 궁금해요."
앞으로의 작품들은 더욱 건강한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이었기에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냈었다며 조금씩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고 부연했다.
"처음이라 방법을 잘 몰랐잖아요. 여기저기 여쭤봐도 도대체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직접 느끼려고 한 거였는데. 인간 송하윤에게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이라면 조금 더 건강한 방법으로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한 걸음 더 성장한 배우 송하윤에게 기대를 가지고 있다며 웃었다.
"제게 어떤 감정이 더 남아 있을까요? 어떤 감정을 더 보여드릴 수 있을까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커요. 정말 신나요. 또 다른 감정들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