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 40년간 무단 사용한 유치원…법원 "변상금 18억 부과 적법"

2024-04-09 13:23
"묵시적 승낙에도 부과 처분한 것은 신뢰 원칙 위배"
재판부 "장기간 방치한다고 점유자 권리 인정 안 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가정법원·서울행정법원 전경. 2023.06.12[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공유지를 40년간 무단으로 점유하다가 소유권 소송을 제기해 패소한 유치원 운영자가 거액의 변상금도 물게 됐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당시 정상규 수석부장판사)는 A씨 등 2명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상대로 낸 변상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 등은 1978년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내 부지와 건물을 분양받아 40여 년간 유치원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부지와 인접한 시 소유 공유지 424㎡(약 128평)에 수영장, 모래놀이 시설 등을 설치해 사실상 유치원 부지처럼 사용했다.

이들은 2018년 민법상 '점유취득시효 제도'를 근거로 서울시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민법 245조는 20년간 소유 의사로 평온·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 자가 등기를 통해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점유취득시효 제도를 두고 있다.

서울시는 2021년 패소 판결이 확정되자 이들에게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공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한 데 대한 변상금 18억여 원을 부과했다. 지방재정법상 변상금 채권 소멸시효 기간은 5년이다.

A씨 등은 "시는 40년 이상 공유지 점유에 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불복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이는 점유를 묵시적으로 승낙한 것인데도 변상금을 부과한 것은 신뢰 보호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변상금 부과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A씨 등이 공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A씨 등이 제출한 증거만으론 원고들이 신뢰할 만한 시의 공적 견해 표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 등이 관련 민사 사건에서 제출한 의견이 패소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유치원 펜스 경계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 수목을 짚으면서 "이러한 사정은 원고들이 펜스 내부 토지 부분을 유치원 부지로 점유·사용했음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또 "국유재산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자를 국가 등이 장기간 방치한 후 변상금을 부과한다고 해당 처분이 신뢰 원칙에 반하게 된다거나 점유자의 권리가 인정될 순 없다"며 "이는 공유재산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