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가팔라진 美 친환경차 목표치에 낀 글로벌 완성차업체

2024-04-05 07:50
이순남 기아 전 전무 기고

전기차 판매가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에 투자를 보류하거나 지연시키고 있다. 벤츠는 신엔진을, GM은 다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개발하고 있고 현대차는 엔진 개발실을 새로 만들고 있다. 

수요 구조 변화 요인에는 소비자의 우선 선택권과 환경 규제가 있다. 리먼 사태 이후 고유가 시대가 되면서 고객들은 저연비 승용차로 몰렸다. 일찍부터 ZEV(무공해차) 규제를 도입해 온 캘리포니아주의 지난해 전기차 보급률은 전체 미국의 3배인 21.4%에 달했다.

미국 전기차는 평균 5만 달러 이상의 높은 가격과 고금리 부담으로 전기차 출시 초기만큼의 수요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한파에서의 충전 문제, 충전 인프라 부족, 중고차 가격 하락 등의 요인도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 차를 선호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4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2027년식부터 2023년식까지 대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가스 규제 초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후 협약에서 탈퇴했던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하면서 전미 노조 협회의 표를 의식한 바이든 정부는 지난 3월 규제치를 완화했다.

전기차 판매 비율을 줄이는 대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하이브리드 판매 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파워트레인별 판매 비율을 3가지로 제시했다. 시나리오 A, B, C에서 전기차 판매 비율은 2030년 기준 기존 60%에서 각각 44%, 37%, 31%로 낮춰졌다. 이 가운데 전기차 비율을 31%까지 낮춘 시나리오 C의 경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하이브리드 판매 비율은 각각 27%, 16%까지 높아진다.

2030년 전기차 판매 비율이 기존 안 60%에서 31%로 크게 낮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지난해 미국 신차 판매에서 전동화 차량 판매 비율이 16%(BEV 7.5%·PHEV 1.7%·HEV 7.8%)였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여전히 높은 규제치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업체 그룹별 전동화 차량 판매 비율은 도요타 29.2%, 혼다 22.4%, 현대 기아 17.3% 순위였고 GM이 2.9%로 가장 낮았다.

도요타, 현대차·기아, 포드는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 차를 운영해 왔지만 GM은 전기차로 올인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혼다는 하이브리드에, 스텔란티스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각각 집중하면서 미래 전기차를 개발해 왔다.

전동차 중 하이브리드 판매 비율은 도요타가 26.7%, 혼다 22.4%로 현대, 기아의 9.7%를 크게 앞서고 있지만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판매 비율에서 6%로 가장 높다. 일본 업체들의 하이브리드 호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2023년 도요타의 전기차 판매 비율은 0.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1.8%에 그치는 점은 문제로 지목된다. 

지난해 도요타의 캘리포니아주 ZEV(BEV+PHEV)판매 비율은 5.3%로 현대차(24.8%)나 기아(14.2%)보다 크게 낮았다. 2년 후 적용될 2026년식 ZEV의무 판매 비율 35%를 만족해야 한다. 3년 후 전체 미국에 적용될 27 Model Year 규제대응을 위해서는 하이브리드 판매 비율을 지난해 26.7%에서 16%로 크게 줄여야 한다. 대신 전기차를 0.8%에서 24%까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1.8%에서 10%까지 증대해야 한다.

현재 판매가 미미한 전기차 bZ4X에 2025년 미국에서 양산 예정인 bZ5X가 추가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도요타의 북미 법인장은 30년 전기차 판매 비율이 30% 정도는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규제보다는 고객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기차 개발, 생산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테슬라 등으로부터 환경 규제 크레딧을 구입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의 머스키 법은 강소 기업 혼다를 글로벌 혼다로 만들었고 유럽의 이산화탄소 규제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폭스바겐의 클린 디젤을 이기는 계기가 됐다. 미국 전기차의 미래는 하원을 통과한 고객 선택권 법안을 부결시키려는 바이든과 환경 규제를 완화하려는 트럼프의 대선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순남 기아 전 전무 [사진=아주경제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