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유엔 안보리, 러 반대에 대북제재 위반 감시 내달 말 종료

2024-03-29 08:49
북·러 무기거래 정황…러시아 거부권 행사
추가 대북제재 번번이 막혀…위반 이행 감시마저 끝

쌍안경으로 탱크병 장애물극복 훈련보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조선인민군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탱크)사단 지휘부와 직속 제1땅크장갑보병연대를 시찰하고 연대훈련장에서 땅크병들의 장애물극복 및 고속돌파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25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연합뉴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패널 활동이 내달 말 종료된다. 대북제재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위반 사항을 유엔 회원국에 알릴 수단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대북제재가 크게 약화할 수 있다.
 
안보리는 28일(현지시간) 회의를 열고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임기를 1년 연장하는 결의안을 표결한 결과,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지난 14년간 이어진 전문가 패널 활동은 오는 4월 30일 만료된다.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13개국은 찬성했고, 중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또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그간 안보리는 매년 3월께 결의안 채택 방식으로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씩 연장해 왔으나, 이날 결의안 채택 불발로 전문가 패널 활동은 내달 종료된다. 지난해 표결에서는 만장일치로 임기를 연장했다. 지난 14년간 임기를 갱신하는 데 문제를 겪은 적은 없었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나선 데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로 전문가 패널을 유지하는 게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러시아와 북한 간의 무기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 전문가 패널의 활동은 러시아에 부담이다. 실제 이달 발간된 연례 패널 보고서에는 러시아가 대북제재를 위반하고 북한과 무기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된 사진 등이 담겼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계기로 출범한 전문가 패널은 전문가 8명으로 구성해 활동해 왔다. 안보리 대북제재위를 보조해 북한의 제재 위반 의혹 사례를 조사하고, 매년 두 차례 대북제재 이행 위반에 관한 심층 보고서를 냈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추가 대북제제가 번번이 막히며 식물 안보리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오던 차에 전문가 패널 활동까지 중단된 만큼, 유엔의 대북제재 힘은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2017년 12월 이후 6년간 유엔 안보리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이 주도한 새로운 대북 제재에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한 영향이다. 

지금도 북한은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등 기존 제재는 성공하지 못했다. 안보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첫 대북제재 결의 1718호를 채택한 후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10개에 달하는 결의안으로 제재를 강화했다. 그러나 추가 제재가 필요하다는 게 국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전문가 패널 활동 종료와 관련해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CC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현시점에서 러시아는 핵무기 비확산 체제 수호나 안보리의 온전한 기능 유지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탄약 및 탄도미사일 공급을 위해 북한을 두둔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불법적인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무기를 (북한에서) 수입하는 등 한동안 대북 제재를 위반해 왔다"며 "북러 군사 협력 심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는 모든 국가가 매우 우려해야 할 사안이며 그런 국가에는 오늘 기권하기로 선택한 중국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