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울산왜성의 물길 복원한다"...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도망친 물길
2024-03-13 17:19
400여 년전. 당시 울산의 지형은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지류하천이 존재했다.
이중 울산 중구에 위치한 학성은 산줄기와 이어지지 않고 홀로 우뚝 솟은 지형이다.
이 때문에 육지에 솟은 섬이라는 의미로 도산성(島山城,) 혹은 시루성으로 불렸으며, 태화강으로 흘러드는 지류하천이 존재했다.
하지만 1920년대 잦은 하천의 범람으로 태화강 제방을 축조하면서 물길은 자취를 감추게 됐다.
◇ 전란의 마지막 길···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퇴각한 물길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만6000명을 동원해 40여일 만에 축조했다.
서쪽으로 울산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과 이어진 반구정의 구릉지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이곳은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왜군과 조·명 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정유재란 1597년 12월 22일부터 1598년 1월 4일까지, 1598년 9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조· 명 연합군이 두 차례에 걸쳐 울산왜성을 공격했지만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당시 조·명연합군에 포위된 왜군은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 전멸 직전에 이르렀다.
이후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은 후 철수령에 따라 1599년 1월 18일 새벽 울산왜성의 성채를 불태우고, 왜성 동남쪽 아래 선입지(船入地)에서 배를 타고 태화강을 통해 도망쳤다.
◇ 울산시, '학성공원 물길복원' 사업 추진
울산시가 역사 관광자원 발굴을 위한 '학성공원 물길복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13일 밝혔다.
'학성공원 물길복원 계획'에는 1920년대 태화강 제방을 축조하면서 사라진 태화강과 학성공원을 잇는 물길복원과 그와 연계한 수변 역사·문화공간 조성의 내용이 담겼다.
이와 관련, 울산시는 도시개발사업과 연계한 민간투자를 통해 학성공원 일대를 울산의 랜드마크로 조성하고, 관광 자원화하는 '학성공원 물길복원'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학성공원 물길복원을 통해 역사·문화가 공존하는 수변조성, 물길의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가 공존하는 친수공간, 도심 속 자연을 느끼는 녹색 공간조성 등을 추진한다.
또한 시는 학성공원 일대의 배수구역을 검토해 물길복원 후의 유출량 산정을 통해 적절한 홍수조절 방안과 유지용수 확보 및 수질관리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폭포형 벽천, 아치형 다리, 수변테마정원, 국립성곽박물관 조성, 수변주제 문화거리, 기존 학성공원 역사·문화 순환길 등 주변 관광자원과의 연계방안도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총 사업비 5900억원에 대한 민간투자 유치와 개발이익환수법에 따른 개발이익 환수를 통한 재원조달 방안을 구상중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도시개발을 통한 민간투자를 유치하고, 민간 투자자로부터 개발이익을 환수해 쇠퇴해 가는 학성공원 일대를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울산 대표 수변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