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의 타임캡슐] 선거 여론조사의 허와 실
2024-03-12 06:00
지난 2월 하순 더불어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이 중도 사퇴했다. 여론조사 기관이 경쟁입찰에서 탈락했다가 뒤늦게 추가되었다. 그 과정에서 선관위 외부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선관위원장은 사퇴를 발표하면서 자신이 “허위보고를 받고 속았다”고 폭로했다. 공천 관련 여론조사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어떤 여론조사기관이 조사를 수행하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후보들은 공정하다고 인정받는 조사기관의 결과라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원장도 모르는 어떤 기관이 조사를 시행하고 그것이 결과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선관위원장은 자신을 ‘감투만 씌워놓은 들러리’였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상황을 모르는 척 받아들이거나 혹은 사퇴하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결정해야 한다. 그는 사퇴를 택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둔다고 하면서도 당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 그렇게 말했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몇 차례 정당의 공천심사위원을 한 바 있다. 그중 한 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모 정당에서 공천심사위원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를 찾는다면서 필자를 찾았다. 여러 차례 고사했음에도 정치 9단들은 거절할 수 없는 이유와 상황을 만들어 부탁했고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맡은 것이 공천심사위원 겸 여론조사소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위원장은 여론조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당 내부 인사였다. 필자가 공심위원 겸 여론조사소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하는 일은 합리적인 여론조사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었다. 공심위에서 우선 1차 심사를 하고 2배수 혹은 3배수를 추려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여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 확실해서 공천이 즉 당선인 경우도 많다. 따라서 후보들이 여기에 목숨을 거는 건 당연하다. 우선 사회조사 전문기관을 매출액 순서대로 나열하고 10곳에 통보하여 조사에 참여하겠는가를 묻고 선정하였다. 며칠 뒤에 당의 사무직원 한 사람이 찾아와서 조사기관 하나를 추가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기관의 대표는 당에 기여를 많이 했던 당원 출신이고 조사에 경험이 많다고 했다. 당에 대한 기여도가 조사기관 선정에 반영되려면 사전에 논의됐어야 했고 이미 결정이 끝난 상태라서 추가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안이라 사적인 이해에 의해 번복하면 안 되는 게 상식이라 생각했다.
여론조사소위원회에서 조사의 규정을 정하면서 매우 상식적인 사항들을 반영하였다. 조사 결과의 검증을 위하여 결과 중 10%를 무작위로 택하여 사후조사한다는 것을 규정에 넣었다. 마케팅조사에서 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10%를 샘플로 뽑아 사후조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당시는 안심번호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사후조사가 더 쉬웠다. 사후조사를 통하여 조사에 실제로 응했는지 확인할 수가 있고 또 어떻게 답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장치로 인해 더욱 성실한 조사가 보장된다.
공심위 회의에선 조사를 시행했던 지역에 대해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여론조사는 늘 복수의 기관에 맡긴 후 그 결과를 합산하여 발표되었다. 발표는 예를 들면 이러했다. “XX 지역의 후보로 A예비후보 32.8%, B예비후보 28.4%. 그래서 A예비후보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방망이를 세 번 두드린다. 후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린다. 이러한 조사가 한창 진행되었을 때, 필자는 규정에 있었던 10% 사후조사를 상기시켰다. 그 제안 직후 공심위의 모든 행위는 중단되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고위원회가 열린다고 했다. 단지 규정에 존재하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공관위의 업무 진행이 중단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결국 돌아온 답은 “여론조사심의위의 부위원장이 이를 요청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규정에 있는 것을 지키자고 했을 뿐인데 권한이 없다고 하면 더 이상 공심위원을 계속할 수 없다”고 말한 뒤, 공심위원을 사퇴했다. 물론 기자들 앞에서 한 얘기는 아니었다. 공심위원장에게 말하고 조용히 나왔다. 여론조사가 공정하게 설계되고 실제로 시행되었는지 혹은 조사한 후 조작된 결과가 제시되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 당시 여론조사에 부정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이 있었는지 검증시스템이 가동되어야 바른 조사가 될 가능성이 크고 이 가능성을 믿고 예비후보들은 공관위 발표에 승복하게 될 것이다. 조사기관 후보 10개 중 조사를 시행하는 두 곳이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실제로 조사가 있었는지, 어떤 설문으로 조사가 되었는지, 샘플링은 어떻게 했는지, 결과가 정확하게 반영되었는지, 이 모든 것을 사후조사로 검증해보는 규정은 무시되었다. 그래서 규정을 만들었던 입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 선관위에 이런 규정이나 있었을까? 어떤 알지 못하는 조사기관이 조사를 시행하고 또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정해진 조사기관이 아닌 곳이 추가로 들어오고 위원장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물러나고….
사람들은 필자를 사회조사 전문가라 한다.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후 주로 사회조사방법론과 사회통계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사회학회 임원을 하던 시절에 ‘사회조사분석사’라는 자격증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전국 사회학과에 ‘사회조사분석’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게 하고 교과목을 이수하면 시험을 통해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을 따게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SPSS라는 통계팩키지를 사용하여 직접 실기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방안도 연구했다. 당시 이를 준비하는 교수들과 함께 라는 책을 내기도 하였다. 시험이 시작된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 2022년에 사회조사분석사 2급 시험에 약 1만4000명이 응시했다 한다.
필자가 사회조사에 관한 국가자격시험을 기획하고 만들었고 지난 30년간 수많은 조사를 수행해 왔다. 교수직에 있으면서 또 교수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꾸준히 조사를 해왔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조사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국가기관의 검열은 조사 전문가로서의 상상력을 옥죄고 있고 이에 대해 수모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거 관련 조사를 하고 결과를 공표하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필자가 만든 선거관련 조사의 설문도 당연히 심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필자가 만든 설문이 심사과정에서 부당하다고 수정 요구를 받았었다.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중앙선관위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저렇게 횡포를 부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선관위가 승인 거부한 문항은 직접적으로 선거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 차례 설문지의 승인이 거부되었다. 필자의 설문을 심사했던 선관위 직원은 과연 조사 설계를 해본 경험이 있을까? 사회조사방법론 책은 읽어봤을까?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은 있을까? 선관위 직원이 설문지를 검열하고 문항 수정을 요구할 자격을 누가 부여했나? 이런 의문들이 들었다. 질문이 선거관련 문항이 아님에도 그 문항이 간접적으로 선거 관련 문항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순서상 선거 관련 문항들에 대한 답변을 끝내고 응답하는 것임에도 그의 눈에는 필자가 편파적으로 보였나 보다. 아니라고 하겠지만 특정 정당을 도우려는 의도로 보였다. 결국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선관위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승인 거부된 설문의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야당 대표가 정전 70주년을 맞아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래서 '더러운 평화'와 '이기는 전쟁'에 대해 국민에게 묻고 싶었다. 선관위는 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더러운 평화‘라는 단어가 아마 이를 언급한 야당 대표를 부정적으로 연상시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문항은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다‘는 말에도 다른 문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희생이 따르는 이기는 전쟁‘과 ’희생이 없는 더러운 평화‘라고 수정했으나 이 또한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전쟁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귀하는 어느 것을 택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1. 전쟁을 해야 한다. 2. 평화를 택해야 한다. 3. 잘 모르겠다”로 조사가 실시되었다. 하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이뿐 아니다. 역시 선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포기하더라도 남북한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질문도 허용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포기하더라도”라는 부분을 삭제하라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정작 제시한 질문은 ”남북한이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로 수정되어 물었다. 이 역시 하나 마나 한 질문이 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들은 경고나 불이익을 받아 영업에 지장이 있을까 하는 우려에 선관위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조사 문항에 대해 심사하라는 권한을 누가 선관위 직원에게 주었을까? 선관위 직원의 심사 능력에 대한 검증은 누가 하나? 적어도 사회조사방법론을 배우기나 했을까?
지금 중앙선관위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 조사를 통제하려 한다. 모름지기 국가기관은 최소한의 범위에서 존재해야 한다. 지금 중앙선관위는 부패로 오염되어 있다. 여러 건의 직원 부정채용에 대해 수사를 받고 있다. 권력을 쥐면 교만을 부르고 교만은 부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성경 말씀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 했다. 고쳐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