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의 타임캡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상속세 손질부터
2024-02-07 06:00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서 임기 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2주 뒤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과도한 세금제도를 지목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강력한 세제 개혁의지를 밝혔다. 법률 개정으로 안 되면 대통령령으로 밀어붙이고 정치적 불이익이 있어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이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상속세 문제를 거론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를 낮추거나 없애고 회사법과 상법을 손봐서 거버넌스가 주주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이후 주가는 뛰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테마가 증시에 핫이슈로 떠올랐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대기업 집단의 주가들이 일제히 올랐다. 증권업계나 개미투자자들 모두 낮은 PBR 주식 찾기에 분주해졌다. 대표적인 저PBR주식인 금융주와 자동차주가 급등했다.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후 2주 만에 제주은행이 75%, 흥국화재가 50%, 대형주인 하나금융이 25%, KB금융이 23%가 올랐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주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저PBR주식으로 꼽히는 평균 PBR이 0.3인 유통, 0.4인 금융과 보험, 0.5인 철강 그리고 0.6인 건설, 자동차, 정유, 증권 등의 주식이 주목을 받고 있다. 상속세 이유로 고의로 낮은 주가를 유지한다고 여겨져서 필자가 자주 예로 드는 대표적 기업인 태광산업의 주가는 일주일 만에 5만8000원에서 9만4000원까지 60% 이상 올랐다.
상속세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여러 복합적인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를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주야장천 하고 다녔다. ‘상속세의 저주’라는 칼럼을 시리즈로 쓰기도 하고 <국가의 약탈 상속세>라는 책을 내기도했다.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글을 쓰고 강연도 많이 다녔다. 우리나라가 겉으로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내걸고 내막은 상속세와 같은 좌파 제도로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에 대해 비판도 많이 했다. 상속세를 없애거나 선진국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과연 그게 되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2~3%이고 상속세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97~98%인데 국민적인 동의가 과연 가능한가? 표가 생명인 국회의원들이 부자감세니 부의 대물림으로 이해되는 상속세 인하나 폐지에 동의하겠냐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지금과 같이 세수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이게 먹히겠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주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런 걱정을 해주었다. 좌파들과는 대화가 아예 불가능했다.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오히려 상속세를 더 올려 기업의 오너십을 시민단체나 정부가 행사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속세를 폐지한 스웨덴이 오히려 세수가 늘었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증거자료를 동원해서 설명해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외국의 선례에 대해서는 무시했다. 그럴 때마다 늘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했다. 우리나라 경제 모순의 대부분은 상속세 폐지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 했다. 연금고갈문제가 해결되고, 국가부채문제가 해결되고, 투자와 고용문제가 해결되고 세수부족도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말도 되지 않는, 통과되지도 않을, 세상물정 모르는, 현실 감각이 없는 돈키호테 같은 교수로 취급했다.
우리나라에서 주식투자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 정부 때의 일이었다. 부자들을 때려잡겠다는 부동산정책이 당연히 실패로 돌아가서 주택가격이 두 배로 뛰었다. 어느 지역은 세 배로 뛴 곳도 있었다. 집을 마련하는 것이 도저히 그의 생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오포세대(삼포에 더해 내집과 인간관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같은 것들이었다. 부동산에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수 없는 절망한 세대가 택할 수 있는 것이 코인이라 불리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와 주식투자였다. 주식투자자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2019년에 600만명이던 주식투자자가 2020년에는 914만명, 2021년에는 1374만명, 2022년에는 1441만명을 기록했다. 주식거래규모도 2019년에 2288조원이었던 것이 2년 만에 세 배 이상 커졌다.
“끈질기게 하니 그게 되네요!“ 최근에 들었던 말이다. 필자가 지난 10여 년 동안 노력했던 일들에 대한 위로의 말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저항이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주제이기 때문이다. 담당부서인 기재부의 공무원들도 상속세 폐지나 기업주들의 경영권을 강화시켜주는 제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규제가 많을수록 그들의 권한이 강화되기 때문인가? 필자가 그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기재부 공무원들뿐 아니라 여러 경제단체들의 직원들도 그들이 근무하는 조직의 성격상 기업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돕는다는 것이지 정작 상속세는 그들 개인의 삶과는 특별히 상관없는 일들이라서 그들도 공무원들과 비슷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정부는 기업의 가치(주가)를 높이는 기업 등에 인센티브를 준다고 발표하였다. 주주환원 미흡이 주가가 낮은 원인이라며 배당을 늘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며 배당을 독려한다. 그런데 회사의 자산으로 배당을 많이 하면 주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배당락’이라는 용어가 생겼지 않나. 배당을 하지 않아 자산이 쌓이면 그게 주가 상승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배당을 하지 않아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가는 실적과 미래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이지, 인위적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상속세라는 특별한 변수를 갖고 있어서 주가가 왜곡되어 반영되고 주가 저평가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속세 때문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대주주의 노력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나타난다하니 상속세를 부과할 때 상속재산을 당시의 주가총액으로 하지 않고 주식지분만큼의 순자산가치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업 해외이전 촉진정책이라 불릴 만한 이러한 창의적 저항들이 마지막 발악이기를 바란다. 이러한 저항이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하는 중소기업에게 상속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총선공약을 발표하였다. 이제는 ‘상속세 폐지’가 더 이상 금기의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좌우가 상속세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상속세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가 높고 폐지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성공을 빌며 이 칼럼이 상속세에 대해 쓰는 마지막 칼럼이기를 바란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