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우리도 이젠 '다인종국가' …'초청노동자한국어' 생기나

2024-03-08 06:00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독일은 유럽 여러 나라들 중에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나라 중 하나다. 과거 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선택했던 제2외국어가 바로 독일어이다. 독일 전체 인구 가운데 이민자 출신 인구 비율이 20%에 이른다고 한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독일로 이민을 갔지만 중동 국가, 특히 튀르키예 계열 이민이 가장 많다. 두 나라 간 교류는 오스만 투르크와 프로이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이주는 1960년대 튀르키예 노동자들이 독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이 무렵에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도 한국 정부 주도하에 일을 찾아 독일로 떠났다. 당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놀라운 경제성장으로 인해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튀르키예나 한국 등 외국 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

독일어에 ‘초청노동자독일어(Gastarbeiterdeutsch)’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일종의 ‘피진어(Pidgin)’인데, 피진어란 서로 다른 언어들이 섞이면서 만들어 내는 일종의 중간언어이다. 17세기 영국과 중국 상인들이 거래하면서 영어를 중국어식으로 혼합해서 사용하였는데, 중국인들이 영어의 ‘business’를 엉터리로 발음하면 ‘pidgin’이 되었기에 그런 단어가 생겼다. 독일로 이주해 온 외국 출신 노동자들이 독일어 어휘를 가져오고, 문법구조는 독일어를 단순화한 구조에다 터키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들을 집어넣은 혼합어가 ‘초청노동자독일어’이다.

흔히 ‘영어는 웃으며 들어가서 울고 나온다’ 하고 ‘독일어는 울고 들어가서 웃고 나온다’고 한다. 영어는 처음에는 쉽고 공부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의미이고, 독일어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가령, 영어는 정관사, 부정관사가 the, a·an 두 개지만 독일어에는 성, 수, 격에 따라 남성, 여성, 중성, 복수에다 주격, 소유격, 여격, 목적격의 행렬이 만들어 내는 16개의 정관사가 있다. 영어의 명사에는 성이 없지만 독일어의 명사에는 남성, 여성, 중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것은 남성, 여성적인 것은 여성, 중간적인 것은 중성, 이렇게 일치하는 것도 있고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어렵다. ‘연필(Bleistift)’은 남성이다. ‘꽃(Blume)’은 여성이다. ‘책(Buch)’은 중성이다. ‘태양(Sonne)’은 남성일까 여성일까? 여성이다. ‘달(Mond)’은 남성이다. 일관성이 없다. 독일어는 규칙성이 정교하고 정교한 만큼 복잡해서 울고 들어가지만 일단 규칙을 익히고 내재화가 되면 언어 사용이 쉬워 웃는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노동을 주로 하는 신규 이민자들이 독일어를 차근차근 배울 시간이 없었을 것이고, 규칙을 생략하고 대충 말만 통할 정도로만 익히고 생존 독일어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노동을 목적으로 독일에 입국한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독일어가 바로 ‘초청노동자독일어’이다. 대체로 초청노동자독일어는 이들 이민자 1세대에게만 국한되었는데, 이들 이민자의 후속 세대는 독일 내 공립학교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독일어를 학습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에서는 부모들에게 모국어도 배우면서 이중언어 능력을 갖추었다. 피진어가 진화해서 피진어 사용자 후손들이 모국어처럼 사용하게 되는 언어가 크레올(creole)이다. 아직 독일 땅에 크레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일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이제 한국어로 눈을 돌려보자. 베트남을 비롯하여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유학, 취업, 결혼을 통해서 한국에 정착한다. 시대의 대세와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경제 발전, 소득수준 향상과 여권 신장은 어김없이 출산율 감소로 이어진다. 다른 선진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 우리나라도 좋고 싫고를 떠나 밟게 될 수순이다. 과거 한국이 독일로 노동자를 보냈듯이 이제는 역으로 동남아, 중앙아시아 등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시대의 대세이고 흐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비중이 전체 인구 중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하는데, 올해 한국은 다인종·다문화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 인종, 민족이 만나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 2007년 국기에 대한 맹세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로 바뀌었다. 아마 이때부터 다문화 사회, 다문화 국가를 준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TV에서 토크쇼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이 다들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이 일상화되었다. 옛날에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면 “한국말 잘하네!”라고 하면서 감탄했지만 요즘에는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잘해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다문화 가정 2세들이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아빠는 한국 사람, 엄마는 외국 출신이다. 아빠는 일하느라 바쁘고, 엄마도 바쁘지만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고, 한글도 잘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간은 두뇌 속에 내재된 언어습득장치를 통해서 언어를 습득한다’는 촘스키의 이론이 요즘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언어습득장치가 가장 활성화된 유아기의 언어습득능력이 청소년이나 성인의 학습능력에 비하여 탁월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특히 유아기나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교육을 강화해서 제대로 된 한국어를 말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다. 이에 대한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교육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 언어가 먼저이고 언어를 통해 사고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언어와 사고가 독립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상호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사고가 언어보다 우선한다는 주장이 있다. 어쨌든 언어와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학습능력마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취학률은 전체 국민에 비해 낮고, 특히 도시 지역보다 농촌 지역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한국어 교육 등 정책 이용률도 낮다고 한다. 이들의 한국어 능력 향상이 바로 한국 사회 적응을 높일 뿐만 아니라 학습 능력도 향상시킨다. 현재, 한국어 교육을 위해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방문교육사업, 언어발달 지원사업 그리고 방과 후 교육과 같은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언어학습의 골든타임인 유아·유치부 아이들에게 집중적이고 깊이 있는 한국어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한국어 학습의 골든타임을 놓쳐 한국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면 생활이나 또는 생존마저도 힘들어지지 않을까? 과거 독일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의 초청노동자독일어가 있었듯이 한국에도 ‘초청노동자한국어’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피진어’에서 나아가 변종 한국어인 ‘크레올’이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