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요금제 인하·보조금 경쟁' 압박 상충...이통사 선택은

2024-02-22 16:04
AI 등 신사업 투자에 더 많은 자금 필요
기대수익 축소 속 마케팅비 확충 고심

 
SKT텔레콤·KT·LG유플러스 사옥 전경. [사진=각 사]
 
정부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령을 개정하며 이동통신 사업자 간 보조금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지만, 이동통신사들이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요금제 인하 압박이 날로 심해지면서 사업자 입장에는 기대 수익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2일 단통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제3조의 '지원금의 부당한 차별적 지급 유형·기준' 단서에 예외 사항을 마련한 것이 골자다. 예외 사항은 '이동통신 사업자 기대 수익과 이용자의 전환비용 등을 고려해 방통위가 정해 고시하는 가입 요령에 따른 지급 기준에 따라 이동통신 사업자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통사가 신규 가입보다 번호이동에 더 많은 지원금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기존에는 신규·기기변경·번호이동 모두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해야 했다.

정부는 국민의 통신비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로 단통법 폐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통사 간 자율적인 보조금 경쟁이 단말기 구입비용 인하와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다. 김홍일 방통위원장은 전날 전체회의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업자 간 자율적인 보조금 경쟁을 활성화해 실질적으로 국민의 단말기 구입비용이 절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사업자 간 자율적인 보조금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 목적대로 이통사들이 보조금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 중론이다. 정부의 요금제 인하 압박이 수익성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다. 이통 3사가 보조금 즉 마케팅비를 늘려 타사 가입자를 유치한다 해도 수익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통사들은 전통 수익원 이동통신 시장은 한계에 직면했다고 본다. 생성 인공지능(AI) 등 미래 수익원 발굴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하려는 이유다. 실제 단통법 실시 직전 해인 2013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이통 3사의 무선전화수익(매출)은 후발주자인 LG유플러스를 제외하면 SK텔레콤(SKT)·KT 모두 각각 5%, 6.5% 감소했다. 같은 기간 SKT·KT 모두 유료방송과 기업간 거래(B2B)가 영업수익을 견인했다.

현재 국내 스마트폰 사용률은 99%에 육박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간한 정기간행물 '2023 한국미디어패널조사 주요 결과'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유율은 98.3%에 달했다. 이통사가 이동통신 사업에서 추가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이통사는 정부 압박이 가해진다면 최근 공시지원금을 최대 2배까지 올렸던 것처럼 보조금을 더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달 초 이통사들은 기존 20만원대 안팎이던 갤럭시 S24·S24 플러스·S24 울트라 시리즈에 대한 공시지원금을 최대 50만원대로 올렸다. 

당시 이통사가 일제히 공시지원금을 상향 조정한 것은 정부의 정책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통 3사는 연초 정부가 단통법 폐지 의지를 밝혔을 때만 하더라도 공시지원금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하지만 정부 발표 이후 통신 규제 기관인 방통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LG유플러스를 시작으로 줄줄이 상향했다.

앞서 지난달 방통위는 이통 3사 임원들을 만나 갤럭시 S24 시리즈에 대한 공시지원금 확대를 요청했다. 전날에는 삼성전자에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그 이전인 24~25일에도 통신비 인하 문제를 논의했다. 

업계 관계자는 "요금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에서 보조금 규제 해제가 보조금을 늘릴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며 "미래 기대 수익이 줄어드는데 굳이 마케팅비를 더 늘릴 수도 없고, 신사업에 사활을 걸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