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법인이 병원 알선하고 30% 수수료 받아…산재 부정수급 113억 적발

2024-02-20 16:09
고용부, 산재보험제도 특정 감사 결과 발표
486건 적발…이정식 장관 "11곳 수사 의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소음성 난청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하기 위해 노무법인을 찾은 A씨는 노무법인이 제공한 차를 타고 노무법인이 소개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집 근처에도 병원이 많은데 왜 그렇게 먼 병원에 가느냐'고 묻자 "우리와 거래하는 병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산재 승인을 받았고, 산재 보상금 4800만원 중 1500만원을 노무법인 계좌에 수임료로 입금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와 노무법인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산업재해 부정 수급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접수했거나 자체 인지한 883건을 조사했고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86건이 부정 수급 사례로 적발됐다. 부정 수급 액수는 113억2500만원에 달했다. 

이 장관은 "감사 결과 노무법인과 법률사무소 등 11곳을 처음으로 수사 의뢰했다"며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공인노무사에 대한 징계, 법인 설립 인가 취소 등 엄중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된 위법 의심 유형은 노무법인이 소음성 난청 산재 승인을 목적으로 신청자들을 모집하고 산재 환자에게 특정 병원을 소개한 후 진단 비용 등 편의를 제공해 과도한 수수료를 받은 사례다. 일부 노무법인은 이런 방식으로 연간 100여 건을 수임하고 보상금 중 최대 30%를 수임료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관련 상담·신청을 변호사·노무사가 아닌 사무장이 수행한 사례도 적발됐다. 무자격인 사무장이 산재보상 전 과정을 근로자를 도와 처리한 후 수임료도 사무장 통장으로 직접 수수한 사례도 확인됐다.

고용부는 산재보험 악용을 막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신청과 승인이 급증한 소음성 난청에 대해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 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아 과도한 보상으로 이어지는 점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고용부는 산재보험 요양이 장기 환자를 양산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6개월 이상 '장기요양환자'가 전체 요양환자 중 48% 수준에 이르는 만큼 상병별 표준 요양 기간을 정하고, 요양 연장을 위한 의료기관 변경 승인 기준과 요건을 정해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대다수 근로복지공단 임직원과 노무사들은 산업 현장 최일선에서 재해를 당한 근로자를 위해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제도의 허점 등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기금의 재정 건전성 악화 등으로 이어져 미래 세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고용부는 앞으로 산재보험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게 근로자들이 충분한 치료와 재활을 통해 사회와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