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흔든 이재용 판결] 지배권 강화 목적 같아도…'이사회·주주 중심 경영' 부각에 다른 결과

2024-02-20 20:45

<글 싣는 순서>
1. 이사회·주주 중심 경영이 끌어낸 '무죄'
2. 삼성 승계작업, 다른 기업과 차이점은
3. 대기업 M&A 승계...법조계 우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1심 재판부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 판결을 받은 가운데 비슷한 행위로 ‘배임’ 혐의 유죄를 선고받은 다른 총수들과 차이점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이 회장과 같이 그룹 지배권 강화를 목적으로 그룹사 간 주식 교환을 시도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법원에서 배임 등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들 세 총수에 대한 판결문을 비교해 보면 이사회를 배제한 경영 판단, 그룹 컨트롤타워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 수립 과정 등에서 정반대 모습을 보였다.

20일 대법원에 따르면 최 회장은 2008년 5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배임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 회장 배임 혐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SK C&C를 통한 워커힐과 SK(주)의 주식 교환이다.
 
당시 SK그룹은 최 회장이 지분 49%를 가진 SK C&C가 지주사 SK(주) 지분 10%를 가지면서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형태의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2002년 4월부터 각 그룹사가 다른 그룹사에 대해 가진 지분 중 순자산의 25%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이 제한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 규정이 시행됨에 따라 최 회장은 SK(주) 지분을 직접 취득해야 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구조조정본부는 최 회장이 지분 40.7%를 가진 비상장사 워커힐의 기업가치를 과대계상해 SK C&C에 넘기는 대신 SK C&C가 가진 SK(주) 지분을 최 회장에 양도하는 ‘주식 교환’ 계획을 수립한다.
 
이 과정에서 워커힐 지분 가치는 4배 가까이 부풀려졌는데, SK(주) 주주는 물론 워커힐 이사회 역시 비정상적인 거래를 승인할 리 없다고 판단한 구조본은 이사들 인장을 날인해 이사회에서 의결된 것처럼 꾸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특히 재판부는 구조본이 2001년 작성한 ‘워커힐 보유 Corp(지주사) 주식과 최태원 보유 W/H(워커힐) 주식의 스와프 검토' 문건에서 ’도덕적 비난과 감독기관의 조사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이 명시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회사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배임 혐의를 인지했음에도 이 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고 봤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문제가 됐던 이 회장과 비교해 보면 우선 계획 단계에서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구조본과 미래전략실이 주도적으로 계획했다는 부분은 같지만 회사와 주주 이익을 도모한 삼성과 회사의 피해를 인지했음에도 이를 강행한 SK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또 각 사의 이사회 의결을 거친 삼성과 달리 SK는 구조본이 이사회 인장을 날인했다. 이 부분도 유무죄를 가르는 핵심 사안 중 하나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워커힐·SK(주) 주식 교환은 그 1차 목적이 총수의 지배권 강화라는 부분에서는 같았지만 사후 회사 이익으로 이어진 삼성과 달리 SK는 SK(주)에 721억원 상당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

이 같은 차이점은 2014년 최종 판결이 난 한화그룹 부당지원·배임 혐의 판결문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검찰의 공소사실은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한화 S&C 주식을 저가에 매도하고, 그룹 차원에서 해당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그룹 구조본에 의해 계획됐으며, 이사회 결의 없이 구조본의 일방적 결정에 따른 지시로 진행됐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같은 검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02.05[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