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기의 핀스토리] '고객·산업·해외'…금융권 연구로 보는 경제동향

2024-02-19 17:30
저출산·고령화 가속에 생애주기 등 관심
자금수요 몰리는 주력 산업 분석에 열중
해외로 뻗는 한국…"외국 동향 살펴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금융을 활용해 특정 분야에 돈이 몰리도록 할 수 있고, 시장의 필요에 따라 돈이 몰리는 곳에는 항상 금융이 따라다닌다. 금융업이 기본적으로 돈과 신뢰로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인 만큼 돈을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자금의 흐름이 활발하게 일어날 분야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분야에서 결국 자금 수요가 생기고, 신용을 공급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최근 개인의 삶, 기업의 사업, 국내·외 정책 등의 큰 분류를 통해 자금 수요를 예측하려는 노력을 펴고 있다. 결국 금융권 연구 보고서를 통해 국내·외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가팔라지는 저출산·고령화…생애주기·생활 양식 변화 ‘주목’
금융권은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는 예금·대출 상품을 내놓기 위해 개인의 삶에 집중한다. 특히 KB·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민간 금융그룹을 중심으로 개인의 생애주기나 생활 양식 등과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에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해져 그 변화를 중심으로 연구에 나서는 기업들이 많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지난달 말 공개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분투하는 30대 요즘 아빠’ 보고서를 통해 가정 내에서 남성의 역할 변화를 조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연령대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남성 비중이 2013년 27.9%에서 지난해 43.6%로 급증했다. 남성이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주된 역할로 인식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가사노동이나 자녀 양육 등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는 30대를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가장 힘쓰는 시기로 꼽았다.

보고서는 “가사·육아와 관련해 여성 중심의 주력 소비자군을 설정하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요즘 아빠’ 관련 시장 규모 도출, 행동 특성과 금융 수요 파악 등을 통해 이들을 위한 상품·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해 말 ‘노인 돌봄과 신탁의 역할 확대’ 보고서를 발표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공적 제도의 재정 악화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금융소비자 개인이 노후를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상적인 판단력이 저하된 노인이 치매신탁을 통해 노후 돌봄 비용 보전을 위한 경제적 안전장치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치매신탁 시장이 워낙 소규모인 만큼 각종 제도적 개선과 고령 친화 서비스 강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주력 산업에 자금수요 몰릴까…업종별 분석에도 동분서주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국가 주력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산업계 흐름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민간은행도 기업금융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산업 연구에 힘을 주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매달 월간 산업별 주요 동향을 발표하고 반도체·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산업별 시장 분위기를 분석해 제공한다. 지난 5일에는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최근 시스템반도체와 관련 패키징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선도국보다 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내 주요 반도체 업체 주도의 과감한 투자와 패키징, 소재·부품·장비 기업 등을 포함하는 견고한 국내 반도체 패키징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도 조선·철강·에너지·자원·자동차·중소기업 등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분석보고서를 다수 발표한다. 19일에는 ‘중형조선산업 2023년도 동향’ 보고서를 통해 중형선박 시장 여건 개선에도 국내 중형조선업계의 기반이 약해지는 현상을 다뤘다.

보고서는 “이런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인력 문제”라며 “인력문제는 업계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안이라 해외인력 도입, 국내 인력 양성 등 다각적인 해법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넘어 해외로…“외국 동향 살펴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금융권은 최근 해외에서의 자금 흐름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국내와 상황이 비슷한 외국의 동향을 살펴 미래를 조금이라도 분명하게 예측하고자 하는 수요도 있다.

수은은 해외경제연구소를 통해 국가·지역동향 정보를 제공한다. 지난해 말에는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라시아 지역의 에너지 협력을 분석한 이슈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또한 인도, 이집트, 모로코 등지의 재생에너지 산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기업들이 해외사업을 영위하거나 검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5일 발표한 ‘일본 전환금융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서 금융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살폈다. 전환금융은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탄소저감 설비투자 등 저탄소 전환 과정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2021년 전환금융 시행 이후 지난해 3월까지 누적 1조엔(약 8조9057억원) 규모까지 급성장했다. 국가 차원에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전환금융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제반을 다져온 데 따른 성과다.

한국은 아직 전환금융 관련 제도·체계가 정립되진 않았지만 정부가 노력을 보이고 있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전환금융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금융회사는 전환금융을 기업금융 강화를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인식하고 관련 사업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며 “정책자금을 최대한 활용하고 전환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한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업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