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 日 만화가의 죽음이 韓 콘텐츠 업계에도 시사하는 것

2024-02-19 00:05

일본 드라마 '섹시 다나카씨'. [사진=일본 니혼TV 공식 채널[

최근 일본에서 한 만화가의 죽음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말 드라마로 방영된 만화 '섹시 다나카씨' 작가인 이시하라 하나코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만화·드라마가 일본 현지에서 인기를 끈 만큼 작가의 극단적 선택 경위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던 중 작가를 겨냥한 드라마 각본가의 SNS 글이 도마에 올랐다.

각본가는 드라마의 마지막 2화 각본을 본인이 아닌 원작자가 직접 썼으며 이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비난이 커지자 이시하라 작가는 해명 글을 올렸다. 드라마화 계약 시 원작을 충실히 따를 것을 요구했고 드라마 제작진 쪽에서도 동의했는데, 정작 각본은 원작과 다른 부분이 많았고 스토리 자체가 원작과 달리 흘러가자 결국 본인이 마지막 2화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시하라의 이 같은 해명은 다시 각본가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공격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죄송하다"며 해명 글을 삭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다. 

드라마를 방영한 니혼 테레비는 "영상화 제안 시 대리인(출판사)을 통해 원작자의 의견을 수렴했고 최종적으로 허락을 얻은 각본을 채택해 방영했다"고 주장했다. 원작자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는 취지지만, 정작 작가와 각본가 반응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기에 방송국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원작 작가, 원작 출판사, 드라마화를 진행하는 각본가,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국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있지만 이들 간 논의가 썩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꼭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사극 '고려거란전쟁' 내용과 관련해 원작 소설가와 드라마 작가 간 의견 충돌이 있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가 반드시 원작과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원작자와 각본가, 플랫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원활하게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천 IP가 없으면 2차 창작물도 없는 만큼 원작자의 의견은 어느 정도라도 반영될 필요가 있다.

이는 웹툰업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웹소설 원작 웹툰, 웹소설·웹툰 원작 드라마·영화 등 IP 확장 열풍이 뜨거운 상황에서 각색 과정 중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가령 웹소설·웹툰 영상화 과정에서도 작가, 연재 플랫폼, 영상 제작사, 방송국·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 플랫폼과 같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개입한다. 이 과정에서 원작자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논의 과정에서 원작자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네이버·카카오 등 웹툰 플랫폼들은 웹툰의 드라마화 등 IP 확장의 선순환 효과를 널리 홍보한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이러한 사례들은 IP 확장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부터 제작사, 플랫폼까지 공평한 위치에서 소통하는 것이 더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