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리더십 공백 해소"...멈춰있던 M&A, 신사업 시계 재가동

2024-02-05 16:35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사진=삼성전자]

"불법 경영권 승계, 거짓 공시, 분식회계 등 1심 공소장에 제기된 대부분의 혐의에서 무죄를 받아 그동안 받았던 억울한 오해를 모두 풀게 됐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이제 앞만 보고 달려야죠. 지금이야 말로 삼성이 '원팀'으로 똘똘 뭉쳐서 미래를 향해 달려갈 때라고 봅니다."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한 1심 판결 결과가 '무죄'로 나오자 삼성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재판부가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선언하자 재판을 지켜본 직원들은 "다행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칫 흥분한 분위기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햇수로 9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가 오늘로서 해소됐다"면서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은 그간 이 회장의 경영공백으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이 회장은 이번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2018년 7월 시민단체에 처음 고발돼 그해 12월 검찰의 첫 강제수사를 받았다. 2020년 검찰에 기소된 후 2021년 4월부터 106번의 재판을 받았고, 이 가운데 95번의 재판에 출석하면서 사법리스크 해소에 집중했다. 2022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사면된 데 이어 이날 부당합병 판결에서도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오며 이 회장은 '뉴 삼성' 구축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가장 먼저 멈춰섰던 삼성전자의 투자시계를 되돌리고, 적자를 거듭하고 있는 반도체 경쟁력 확보방안을 마련하는 등 삼성의 미래 전략 확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이 총수 부재로 구심점 없이 흔들리는 사이 TSMC와 인텔은 지난해 삼성전자를 꺾고 글로벌 반도체 매출 1, 2위에 올랐다. 삼성은 추락하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동시에 생성형 AI(인공지능) 시장을 놓고 벌이는 엔비디아, SK하이닉스, 애플 등 경쟁업체와의 초격차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이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삼성전자는 2016년 글로벌 전장기업인 하만을 인수한 이후 별다른 M&A행보가 없다. 삼성은 반도체 기술과 융합할 수 있는 AI, 로봇, 전장 등에서 대형 M&A를 추진하고, 그룹 미래를 책임질 신재생, 이차전지, 바이오 등 신사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안에는 삼성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대형 M&A가 발표될 것"이라면서 "착실히 준비한 만큼 기대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2조4200억원으로 대형 M&A에 필수적인 실탄은 충분하다. 이 회장이 2021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직후 반도체, 바이오, 일자리 등에 240조원(국내 18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만큼 조만간 삼성의 대형 투자 계획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단절됐던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기 위한 대외활동도 빨라질 전망이다.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방한 당시 SK에서는 최태원 SK회장이 만나 미래전략을 도모했지만 이 회장은 사법리스크가 여전해 만남이 불발된 바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자체 AI칩 개발을 위한 '합종연횡'이 심화됨에 따라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삼성의 반도체·AI 등 투자 결정을 빠르게 매듭지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의 중장기 경영전략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도 이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삼성은 그동안 회장-미래전략실-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삼각축을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앞서 국정농단 사태로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그룹 중심축이 무너졌다. 이로 인해 중장기 경영전략 수립과 미래 먹거리를 위한 M&A 작업은 구심점을 잃은 상황이다. 그동안 핵심 계열사가 미니 컨트롤 타워를 해왔지만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평가다.
 
재계는 다음 달 22일 삼성그룹 창립 86주년을 맞아 이 회장이 내놓을 '뉴 삼성' 구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창립기념일이나 신년에 별도의 경영 메시지를 내지 않고 조용한 행보를 보여왔다. 그동안 절치부심했던 경영구상을 올해 창립기념일에 발표하면서 '제3의 창업' 선언을 통해 '삼성의 미래'를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다.